기축년 소의 해를 맞은 이 나라의 현실은 극심한 한파 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다. 경제 위기의 매서움에 더하여 인권 경시와 독선의 무모함이 체감온도를 더욱 내리고 있다.

고려 시대 지눌 보조 국사는 「수심결」의 저자이다. 그의 호가 목우자(牧牛子)인데 쉽게 풀면 소를 치는 사람 즉 소치기란 뜻이다. 기독교에서 양떼를 다스리는 목자에 해당된다. 목자에는 목양자와 목우자가 있는 셈이다. 소나 양이나 모두 양순한 동물이어서 맹수나 도적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소와 양을 잘 기르고 엉뚱한 곳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보살피려면 좋은 목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소치는 목우에는 보다 깊은 뜻이 있다.

인도를 위시한 동남아에서 숭배하는 소 가운데 흰 소는 가장 신성한 소로 신앙된다. 어리석어 보이는 그들의 신앙심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깊은 사랑이 있다. 선가(禪家)의 수행 단계를 열 단계로 압축하여 그린 십우도가 있다.

첫 단계는 소를 찾아 나서는 심우, 세 번째는 소를 드디어 발견하는 견우, 네 번째는 소를 잡는 득우에 이어 소를 제대로 기르기 시작하는 목우는 제 5단계에 해당된다. 소는 마음의 본성을 상징한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와 분주하게 살아가다가 까맣게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마음의 본성을 보지 못하고 마음의 겉모습이나 마음의 소음에만 끄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소를 찾고 소를 기르는 목우는 중요한 일이다. 심우부터 득우까지는 검은 소로 그려지는데 목우부터 소는 흰 소로 전환된다. 흰 소는 마음이 잘 닦여진 성결한 마음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하늘을 보면 수많은 구름들이 있다. 비를 구름, 조각 구름, 양떼 구름, 뭉게 구름 등이 아름답게 있는가 하면 먹구름도 있다. 온통 구름이 잔뜩 끼면 하늘의 본 모습을 볼 수 없다. 구름낀 상태가 그대로 하늘인 것으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구름은 구름일 뿐이요 하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건 구름이 걷혀봐야 알 수 있다.

해와 달도 밤하늘의 별들도 찬란한 무지개마저 하늘에 떠있는 무상한 존재들일 뿐 하늘이 아니다. 태양과 은하계가 50억년 150억년 나이를 자랑하지만 결국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허공은 나이가 없다. 우리의 마음의 본성도 허공과 같아 모든 분별을 초월한다. 마음의 바탕이 비어 있음에 비로소 마음의 여러 작용들이 일어난다.

삶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산다. 태초에 부모와 관계가 있었다. 그 관계가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졌느냐 통제와 비난으로 맺어졌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뀌고 만다. 천국과 지옥처럼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선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악한 마음이 있다. 감동의 눈물이 있는가 하면 비탄의 눈물이 있다.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이 있고 남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 있다. 내가 힘들면 주위를 힘들게 하고 주위가 어두우면 나도 어두워진다. 상호작용하는 관계의 법칙은 엄밀하다. 부모와 관계에서 안정감과 믿음을 획득하지 못한 아이는 커서도 불안정하고 인간관계가 위태롭고 힘들기만 하다. 이것을 치유하려고 세상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고 환경을 바꾸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서 세상이 바뀔 리 없다. 근본을 다스리려면 자기성찰의 지속적인 수양이 필요하다. 목우가 바로 이것이다.

홀로 이롭고 홀로 편하려 들지 말고 어려움을 쉽게 해결하려 서둘지 말 일이다. 소의 품성처럼 서로 존중하고 조바심내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혹독하고 매서운 겨울도 마침내 매화 향기 가득한 봄이 될 것이다.

최훈동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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