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의 짧은 삶을 살았던 이상(1910-1937)선생의 작품 중에서 '황소와 도깨비'라는 동화가 있다. 이 작품은 학교에서 '삼국지반' 독서 동아리를 만들면서 학생들에게 동아리의 특성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활용했던 작품이다.

학생들이 동화의 전개과정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다보면 같은 내용을 읽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화(同和)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시중에는 다양한 동화가 나와 있으나 교과서에서 나오는 작가 중에서 학생들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이상 선생이며, 이상 선생이 동화를 남겼다는 것을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다.

동화의 줄거리는 간략하다.「어느 날 장에서 돌아오던 돌쇠 앞에 동네 사냥개에게 꼬리를 물리고 숲속으로 피해 있던 도깨비 새끼가 나타난다. 도깨비는 재주를 부리는 유일한 수단인 꼬리에 상처를 입어 돌아가지 못하고 상처가 나을 때까지 피할 곳을 찾고 있었다. 마침 황소를 몰고 장에서 돌아오던 돌쇠 앞에 나타난 도깨비 새끼는 자기를 숨겨주면 황소의 힘을 열배로 만들어주겠다고 애원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황소와 도깨비”는 작가의 상상력이 일반적인 생각을 일탈하는 데 재미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도깨비가 피난처로 황소 뱃속을 택했다는 것과 황소 목을 통해서 뱃속으로 들어간 도깨비는 소가 먹은 음식을 먹고 몸집이 커져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작가는 작품 말미에 '하품'은 상대방이 따라서 하게 된다는 습관을 도입하여 도깨비를 황소 뱃속에서 나오게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도깨비가 아니라 귀신이라도 불쌍하거든 살려주어야 한다.”는 돌쇠의 마지막 말이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심사위원으로 있던 신동호화백과 대화중에 '스프링복'을 알게 되었다. “스프링복은 앞쪽의 무리들이 풀을 뜯어 먹기 시작하면 뒤쪽의 무리들은 먹을 것이 없게 되므로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경쟁을 한다. 수천마리의 스프링복은 풀을 뜯을 새도 없이 앞으로 떼거리로 밀려가다가 결국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호등에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도 앞에 있는 이익만을 탐하여 한쪽으로 밀려가는 생활만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신호등은 낭떠러지가 되고 제어를 하지 못한 차량은 스프링복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스프링복이 풀을 먹는 것이 아니라 풀이 스프링복을 먹는 꼴이며,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이 사람을 먹는 경우다.
 
그러나 사람이 스프링복과 다른 것은 밀고 가는 힘도 있지만 풀어내는 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문화다. 오직 이익만을 목표로 조합한 단명(短命)의 문화가 아닌 누구나 인정하고 감동을 주는 맺고 풀어주는 문화다.

이상 선생의 동화에서처럼 황소가 도깨비를 먹는 것도 아니고 도깨비가 황소를 먹는 것도 아니다. 황소는 도깨비를 통하여 에너지를 얻고 도깨비는 황소 덕분에 치료를 하게 되는 상생의 문화다. 즉 충돌과 갈등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맺고 풀어내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 생활문화다. 이러한 문화가 사람이 살아가는 밥(食)이요 법(法)이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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