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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숲

       검은 숲*                                          
                            
                              박수현

숲의 인중이 깊어지면
전나무, 가문비나무가 풀어놓은 뾰족한 침묵들이
흑탄처럼 짙어진다

뻐꾸기시계 속 인형들은 15분마다
신나는 왈츠를 추는데
숲에 든 헨젤과 그레텔은 돌아오지 않는다

* 검은 숲: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슈바르츠 발트(Hoch Schwar-zwalt).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하다. 동화『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된 곳이며 뻐꾸기시계로 유명하다.
(박수현 시집, 『샌드 페인팅』 49쪽, 천년의 시작, 2020)


[작가소개]
박수현, 경북대구출생, 경북대학교사범대영어과졸업 2003년 계간『시안』으로 등단. 시집『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샌드 페인팅』, 연합기행시집 『티베트의 초승달』 『밍글라바 미얀마』『나자르본주』 2011년서울문화재단작가창작활동지원금.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금수혜. 시인협회중앙위원. <온시溫詩>동인. 

[시향]
  박수현 시인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슈바르츠발트 숲 가까이 여행을 한 것 같다. 침엽수인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은 조금만 어두워져도 숲의 굴곡이 깊어지고 흑탄처럼 짙어진다.
  그곳의 특산품인 뻐꾸기시계는 시계 속의 인형들이 15분마다 왈츠를 춘다는데,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라르고 등 어떤 곡이 흘렀을까? 인형들이 몸을 굽신거려 샷세를 밟거나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오픈 더 클로우즈 스텝을 밟아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또한 슈바르츠발트 숲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된 곳이라니 귀가 번쩍 뜨인다. 그곳엔 마녀가 초컬릿으로 집을 지어 놓고 아이들을 꾀어 숲속으로 데리고 들어 올 터이고, 헨델이 돌아갈 표적으로 깊어지는 숲길에 던져놓은 빵 조각은 저녁의 새가 다 물어가 버린다. 표적조차 없어져 어두워진 숲길에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헨젤과 그레텔을 안타까워했던 날이 있다.
  그때는 4ㆍ6배판 여름방학 책이 있었다. 책 뒤쪽 성냥개비 퀴즈를 놀러 온 삼촌이 엽서에 답을 그려서 부쳐주었다. 어느 날 운동장 조회 시간에 3학년 내 이름을 불러 『헨젤과 그레텔』을 전달받게 된다. 
  여름방학 퀴즈 상품으로 나의 유일한 동화책이 되어 매일 이 한 권을 방바닥에 엎드려 읽는데, 읽을 때마다 헨젤과 그레텔은 돌아오지 못하고, 같은 대목에서 엎드린 발을 콩콩 굴렀던 것 같다. 
  나는 눈물이 뚝뚝, 아가 동생들도 기어와 책장을 찢지 않고 그림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놀던 일, 잊었던 유년이 다녀가고, 흑탄처럼 깊어지는 침엽수의 뾰족한 침묵들 속으로 달콤한 초컬릿 기둥 마녀의 집을 새로이 떠올려 보게 한다. 여행가 박수현 시인의 “숲의 인중이 깊어지면” 함축된 시어 첫 마디에 이끌리어 시공을 초월한 먼 여행에 빠져보는 날이다.
글: 심상숙(시인) 

박수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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