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시가 있는 공간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빠져나온다지만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빠져나온다지만                                                     
                                       
                                                                                    김건수

  떠들썩하던 저녁 회식이 끝났다. 벌건 얼굴들이 웃으며 느긋하게 자리를 뜨면서 서로 신발을 찾느라 내실 주위가 어수선했다. 바쁠 것도 없는 나는 꽁무니에 섰다. 그런데 신발을 신으려 하니 신발 모양이 좀 이상했다. 한 짝은 내 것인데 다른 한 짝은 남의 것이었다.
  “신발 바꿔 신은 사람 찾습니다.”
  그때 국문과 한 선생이 내 말을 받았다.
  “아 그거 우리 과 손 선생이 한 걸 거야. 걱정하지 마. 내일이면 해결 돼.”
손 선생은 술도 못하면서 신발은 자주 바꾸어 신는 기술이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안심이 되었다.
  그는 한창 젊을 때 한국기원 공인 1급을 딴 수재였다.
  우리는 그를 ‘사부’라고 불렀다. ‘오늘 밤 사부님이 내 구두 한 짝을 바꾸어 신고 가신 것이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나는 바뀐 신발을 신고 태연하게 2차까지 따라갔다.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일이 떠 올랐다. 미안해하는 손 선생 얼굴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하숙집을 나섰다. 오전수업을 마치고 그에게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전화를 했다. 쾌히 승낙하며 나만큼 반가워했다. 
  그런데 그에게서는 신발에 대한 고민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신발 얘기가 먼저 나와야 되는데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뜸 들일 일이 아닌데 왜 그러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젯밤 집에 잘 들어갔지? 뭐 바뀐 것도 없고?”
  “바뀐 거? 없는데.”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젯밤에는 내가 죽일 놈이 되었구먼.”
  “말하자면 그런 셈이 되었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긴 했지만 범인을 헛잡은 데서 오는 낭패감에 좀 의기소침 했다.
  주말, 서울집에 도착했다. 짝짝이 신발을 현관 한 귀퉁이에 밀어붙였다.
  다음날은 결혼식이 있었다. 신발장을 열고 다른 신발을 꺼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집에 있던 신발도 짝짝이였다. 갑자기 그런 신발이 두 켤레가 되어 있었다.
결혼식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결혼식 늦겠어요. 뭘 그러고 있어요?”
  “신발이 모두 짝짝이야.”
  그러자 아내가 다가왔다. 한참 살핀 아내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화투짝 맞추듯이 짝짝이 신발을 서로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주초에 내가 집을 떠날 때 이미 짝짝이로 신고 간 것이었다. 일주일 내  신고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가 술을 마시고서야 그것을 깨달은 셈이다. 술이 들어가면 지혜가 밖으로 나온다는데 나는 술이 들어가야 지혜도 따라 들어온 격이니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에세이문학』통권 138호, 완료 추천작, 에세이문학사, 2017 여름) 

[작가소개]
(김건수, 대전출생, 영문학박사, 강원대학교 영문과 교수직 역임, 일현수필문학회, 맑은내 회원, 2017년『에세이문학』여름호에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빠져나온다지만>으로 등단 및 작품발표 다수 )

[시향]
  이 한 편의 수필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작가는 어떻게 그 며칠을 왼짝끼리. 혹은 오른짝끼리 신발을 신고 다녔을까? 술이 거나해진 회식 자리 끝에 신발짝이 같음을 발견하고, 어느 선생님의 지목대로 앞서 신발 한 짝을 바꿔 신고 갔을 “사부”를 생각하며 하룻저녁과 다음 한나절을 기다려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다정하고 호기롭게, 나중에는 풀지 못해 잠시 의기소침하기에 이른다. 결국 주초에 짝을 바꿔 신고 나온 신발을 주말 본가에 돌아가서야 가족의 재치로 짝을 맞춰 신게 된다.
  해학이 극치에 이르는 과정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절대 부족하기에 평생의 반려자가 주어진다. 큰일을 해내는 사업가나 유명인사, 대단한 공부를 해내는 수재일수록 소탈하고 수더분하여 사소한 일에 무심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보다 선택적인 집중력 응집을 위한 무의식적 자아 생존의 현상이리라.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빠져나온다지만” 작가는 술이 들어가서야 짝이 같은 걸 발견하였다며, “나는 술이 들어가야 지혜도 따라 들어온 격”이라고 한다. 월하독작(月下獨酌),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호수에 빠진 달을 손으로 건져 올리겠다는 당나라 최고시인 이백(李白)의 시(詩)를 뒤로, 애주가 작가의 술 대목 한 말씀이다.
  글: 심상숙(시인) 

김건수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건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