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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저자  

    독자와 저자                         

                             김부회

병원에 입원했다
큰 병은 아니지만 몇 주 입원해야 한다는 권고에
나이롱 환자 비슷하게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던 어느 날
내 책을 머리맡에 둔 연세 지긋한 환자를 보았다

무려 칠 년의 준비 끝에
오백 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
몇 부 팔리지도 않았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우연한 조우
반가운 마음에 그 방을 들락날락하며 말 붙일 기회만 엿보다
며칠 지나 슬그머니

- 그 책 자주보세요?
- 아니, 두꺼워 베고 자기 좋아서
- 펼쳐서 보시는 것 같던데
- 잠 안 올 때 보면 금방 잠이 와
- 어떤 놈이 썼는데 고생은 한 것 같은데, 뭔 말인지 도통

그놈이 이놈입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뱅뱅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그나마, 고침안면(高枕安眠)⁕이 된다니 뭐라도 도움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지 홀로 위로하다가도
칠 년의 세월이 아깝기도 하고, 그러다
퇴원하신다며 선물로 책을 주고 가신다

-잠 안 올 때 최고여, 베고 자
-감사합니다
뭐, 그런 거지, (고약한 노인네…)

고침안면(高枕安眠): 근심없이 편안하게 잘 잠
(시쓰는 사람들(동인지) 20호『달을 달래는 별』58쪽, 사색의 정원, 2023)

[작가소개]
(김부회 김포문인협회이사, 김포문예대강사역임, 2011년『창조문학신문』신춘문예당선, 제2회문예바다신인상, 제9회중봉문학상대상, 제12회모던포엠최우수신인상(문학평론부문), 제3회가은문학상(창작지원금수혜), 제17회문학세계문학상평론부문대상, 2023년『비평과논객』 올해의 논객상 수상, <김포신문〉<대구신문〉시 해설위원, 계간 『문예바다』 편집부주간, 시집『시답지 않은 소리』2014, 『러시안 룰렛』2021, 평론집『상상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탐색』2019)

[시향]
  김부회 시인의 평론집을 필자도 처음 받아들던 날 어찌나 무거운지 허리가 휘청, 세상 한구석 열공에 마음 부자가 되어 도독하게 살 오르는 소리, 뭉클했다.
  우리는 때때로 몸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의사의 권유대로 시인이 얼마간 입원을 하게 된다. 이 방 저 방 병실을 기웃거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시인(저자)은 시인의 책을 머리맡에 둔 연세 지긋한 환자를 보게 된다. 며칠 벼르다가“그 책 자주 보세요?”하며 말을 붙인다. “아니, 두꺼워서 베고 자기 좋아서” “펼쳐서 보시는 것 같던데” “잠 안 올 때 보면 금방 잠이 와” “누가 썼는지 고생은 한 것 같은데,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단다. 무려 칠 년의 준비 끝에 오백 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이 그나마 고침안면(高枕安眠)이 된다니, 감사한 일이지 홀로 위로하다가도 칠 년의 세월이 아깝기도 하고, 그러다 퇴원하신다며 시인에게 선물로 책을 주고 가신다. “잠 안 올 때 최고여, 베고 자” “감사합니다” (…) 
  어려서 듣기로 ‘책을 베고 자면 공부를 못 한다’라는 속설이 있지만, 어떤 책은 엎드려 읽다가 슬그머니 접어 머릿밑에 베고 누우면 그 책을 완전히 정복한 느낌마저 든다는 사람도 있다.
  시인의 해학으로 에두르는「독자와 저자」시는 오래된 크리스마스 거리처럼 가슴으로 흐른다. 따뜻하고 경쾌하다. 혹여 밤잠을 설치기도 한 필자(심상숙)의 시집이 적당히 두꺼워 어느 집 소반 위에 라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글: 심상숙(시인) 

김부회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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