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시가 있는 공간
진분홍 봄을 매달고    

        진분홍 봄을 매달고                           

                                 이규자

봄빛에 무르익은 산비탈은 도원이다
늙은 복숭아나무들
진분홍 봄을 매달고 다시 싱싱하게 살아난다

노구의 몸으로
당당히 서 있는 저 모습
세파에도 꿋굿하신 내 아버지 닮았다
밭둑 사이로 다가온 얼룩진 일기장
갈피마다 피어난다
겨울이면 밤새 복숭아 봉지 만들고
산기슭 오르내리며 광주리에 담았던 시간들
그 땀의 열매로 키운 칠 남매
잘 익어 이제는 단맛이 흐른다

아흔다섯
고목이 되신 아버지
묵정밭이 된 고향 밭뙈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저곳은 누가 지킬 것이며
세월은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노구에 매달린 연분홍 꽃 구릉이 아름다운 봄날
애꿎은 복숭아밭을 서성이며
늙은 아버지는 꿈을 꾼다
무릉에서 도원까지

(『김포문학』 40호 231쪽, 사색의 정원, 2023)
(2023 『김포글샘』 100쪽, 김포문예대학)

[작가소개]
이규자 김포문인협회이사, 한국문인협회회원, 『예술세계』시 등단, 한국문학신문제1회수필대상, 제15회 복숭아문학상우수상 수상, 에세이집『네이버 엄마』, 시집『꽃길, 저 끝에』, 달詩 동인

[시향]
  이규자 시인의 삶에 대한 시선은 목가적이다. 낭만이나 풍경 이전에 고단하지만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흔적이 뿌리 깊이 내려있다. 
  봄빛에 무르익은 산비탈은 도원이다. 늙은 복숭아나무들, 진분홍 봄을 매달고 다시 싱싱하게 살아난다. 노구의 몸으로 당당한 저 모습들이 세파에도 꿋꿋하신 내 아버지를 닮았다. 
  여명이 밝아오고 새들이 우짖으면 도원은 하루의 문을 활짝 연다. 겨울 동안 밤새 만들어둔 복숭아 봉지를 씌운다. 형형이 깬 마음으로 산기슭 오르내리며 광주리에 담았던 시간 들, 그 땀의 열매로 키운 칠 남매가 이제 잘 익어 단맛이 흐른다. 아흔다섯 고목 아버지는 묵정밭이 된 고향 밭뙈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노구에 매달린 연분홍 꽃 구릉이 아름다운 봄날, 저곳은 누가 지킬 것인가? 애꿎은 복숭아밭을 서성이며 늙은 아버지는 고요히 붐비는 희열 속으로 꿈을 꾼다. 무릉에서 도원까지, 
  옛이야기에 어느 효녀가 있었다. 병석에 누운 홀아버지는 한겨울인데 잘 익어 물이 뚝뚝 지는 수밀도를 먹고 싶다고 했다. 눈밭에 버선발을 빠뜨리며 복숭아나무를 찾아 나선다. 소녀는 끝내 산신령의 도움으로 산기슭에서 눈 덮인 복숭아를 따게 되어 아버지의 병환을 고쳤다는 이야기다.
  찬비 그치면 곧 함박눈이 쏟아지겠다. 산기슭에 눈 덮인 복숭아 봉지를 들추면 단물이 뚝뚝 듣는 아이스 수밀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복사 꽃처럼 진분홍 고운 마음씨면 딸 수 있을까 싶다.
글: 심상숙(시인) 
 

이규자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규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