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시가 있는 공간
(동화) 소복소복 쌓이는 봄꿈

(동화) 소복소복 쌓이는 봄꿈

                                                  이준섭

 

눈길은 멀리 하늘길이 되어 하늘에 닿아있습니다.

*

‘꿈속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간 선녀님 같은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강철이는 어젯밤 꿈속에서 만난 선녀님을 만들고 있습니다. 온갖 정성과 사랑을 다 바쳐 만들고 있습니다.

*

아직도 한밤중일까? 억지로 꿈결인 듯 일어났습니다. 그냥 마루 끝에 서서 마당의 눈밭에 오줌을 누고 들어가려 할 때였습니다.

“야 시원하겠다. 히히!”

“오매, 오매야, 이이고 무서워라!”

떨면서 쫒기듯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삼촌, 마루 밑에서 무슨 소리가 났어요”

*

“왜 남의 집 부엌에 누워 있어. 냉큼 일어나지 못할까!”

할머니께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추운 겨울밤 불 때는 아궁이 속에서 가마니때기를 베고 누워 잤나 봅니다.

“너무 추워서 그랬어유, 미안허유.”

검정 치마에 누르데데한 저고리를 입고 떨어진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별빛 같은 눈동자, 도톰한 입술, 약간 까맣지만 복슬복슬한 얼굴, 새하얀 이, 빨간 고추 같은 콧등,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

강철이는 그녀가 어젯밤에 봤던 선녀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께서 물을 데워 씻게 하고 헌 옷이지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나 봅니다.

또 부엌문을 훔쳐보았습니다. 함박눈을 타고 찾아온 선녀님이 지금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있습니다. 봄꿈을 속삭이면서,

*

선녀님이 조그만 보퉁이를 들고나왔습니다. 선녀님은 강철이가 뚫어 놓은 눈길을 걸어서 동구 밖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분명코 꿈속의 선녀님이야. 강철이는 선녀님을 못 가게 꼭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선녀님을 한 번 불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저 멀리서 선녀님 목소리 같은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종소리와 함께 눈꽃 송이가 또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외딴 마을에는 함박눈으로 변한 봄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습니다.

(『김포문학』 39호 359쪽, 사색의 정원, 2022년)

 

[작가소개]

이준섭 1980년《동아일보》신춘문예동시당선, 김포문인협회초대회장역임, 한국아동문학인협회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회원, 청구아동문학상동시부문수상, 방정환아동문학상수상, 동시집『대장간 할아버지』외 다수, 시조집『새 아침을 위해』외 다수, 『수필집 국화꽃 궁전』외 다수, 전자도서시집『장미원에서』발간

 

[시향]

이준섭 작가는 아동문학가로 어린이들의 꿈과 사랑을 써왔습니다. “소복소복 쌓이는 봄꿈”, 외딴 마을 강철이가 꿈에 본 선녀님을 위하여 눈길을 치웁니다.

따스한 부엌 아궁이에 선녀 같은 이가 가마때기를 베고 누워 자다가, 할머니의 호통에 부스스 일어납니다. 어머니는 그를 부엌에서 씻겨 옷을 갈아입혀 주고 따끈한 밥을 차려줍니다.

“꿈속의 선녀님이야. 강철이는 선녀님을 못 가게 꼭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선녀 님을 한번 불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어릴 적 ‘명덕 산’이라 부르던 붉은 맨발의 선비, 그가 대문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상을 차려 그를 부엌 자리에 앉도록 하고는 했습니다, 글도 창도 한다지만 들어본 적 없고, 목사님도 스님도 친구 한다는데, 긴 머리가 떡 덩이 져서 주렁거리는, 집도 절도 없이 깡통 껍질도 들지 않은 맨손 걸인이었습니다.

그가 다녀가면 은근히 행운이 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상서롭다 상서롭다’ 했습니다. 그가 왔던 그 날에도 동화 속 기다림처럼 함박눈으로 변한 봄 꿈이 소복소복 쌓이는 날이었습니다.

글: 심상숙(시인)

 

 

이준섭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준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