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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생각

         국자 생각

                                최종월

 

끓는 냄비 안으로 들어간다

 

우물 깊이 두레박이 내려가 하늘 길어 올리듯

망설임 없이 묵묵히 퍼 담아준다

두레박이 품은 서정이 국자는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늘이나 별, 구름이나 달이 아닌 것은 서정이 없을까

가슴으로 담아준 것이 목젖 적시며 넘어가는 소리

 

입이 없는 나는 즐겁다

 

얼음 둥둥 뜨는 냉채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가슴에 품었다가 내려놓는다

노랑 빨강 파랑이 유빙으로 맴돌고

휘리릭 휙

투정 없이 유리그릇은 환하다

 

종일 비어있는 가슴이다

 

내 품에 안겼다 떠난 것들

아주 짧은 시간에 품었던 것들

지금 멀다

방금 지나간 바람에 공작단풍잎이 몸을 떤다

 

흔들리지 않는 나는 가슴을 연다

 

(최종월 시집, 『나무는 발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지혜사랑 시인선 254, 2022)

 

[작가소개]

최종월 강원도 태백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김포문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사 편찬위원. 김포문학상 대상. 경기예술인상.『계간문예』작가상. 청록문학상 수상. 시집 『반쪽만 닮은 나무 읽기』, 『사막의 물은 숨어서 흐른다』, 『좽이 던지는 당신에게』, 『나무는 발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향]

최종월 시인의 삶에 대한 시선이 무생물 하나에게도 따스하게 어루만지듯 포근하다. 시인의 오늘이 긍정과 연민, 감사의 향연이다. 우리는 어느 날 거리에서 이웃을 만났을 때도 “밥 한번 먹자”라며 미소로 길을 가른다.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일은 최상의 의식이다. 우리네 인정이다.

이 자리에서 무심했던 식사(취사) 도구, “국자 생각”이라는 시에 시인은 도달한다. 그도 서정이 있고 가슴이 있다고, 국자는“끓는 냄비 안으로 들어가” “얼음 둥둥 뜨는 냉채 안으로 들어가” “하늘 길어 올리듯 망설임 없이 묵묵히” 사랑을 “퍼 담아준다.”라고 한다. “두레박이 품은 서정이 국자는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하늘이나 별, 구름이나 달이 아닌 것은 서정이 없을까,”라며 국자 에게도 서정이 있다고 말한다. 가슴이 있다고 우긴다. 이는 즉 시인의 서정이며 가슴이리라. “가슴으로 담아준 것이 목젖 적시며 넘어가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들도록 해주어 흡족하고 국자는“입이 없는 나는 즐겁다.”라며 물러선다. 이번에는“노랑 빨강 파랑이 유빙으로 맴도”는 냉채를 “잠시 가슴에 품었다가” 옮겨 줄 때 “휘리릭 휙/투정 없이 유리그릇은 환”히 비워진다고, 국자는“종일 비어있는 가슴”이라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품었던 것들/지금 멀다.”라며, 국자의 가슴으로 “퍼 담아 주”고픈 마음을 고대하고 있다. “방금 지나간 바람에 공작단풍잎이 몸을 떤다.”라고, 그러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는 가슴을 열”고 기다리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두고 있다.

국자 하나의 빈 가슴이 되어 서로의 밥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퍼 담아 줄 시인의 기다림에서 뜨거운 사랑과 감사가 느껴진다. 삶이 이토록 살가운 듯 손끝에 만져지다니, 서로의 가슴에 따끈하거나 시원한 “국자 생각”이 되어보고픈 기다림의 시간이다. 세상의 꿈들을 더한층 실어주는 도닥임의 기회이다. 그리하여 이 시간 곧 둘러앉을 빈 식탁 위를 한 번 더 말갛게 닦아두는 것이다.

심상숙 ( 시인)

 

 

최종월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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