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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스터

                클로이스터

                                                백향옥

 

 닫힌 문이라고 생각할 때 문은 열리지 않는다

 

 먼지 쌓인 낡은 벽을 밀면

 문이 열리고

 회랑에 둘러싸인 오래된 정원에 이른다 이곳은 무덤과 우물이 있던 곳

 집필실과 기도실을 오가는 흔들리는 등불은 없다

 

 긴 사제복을 끌며 돌아나가는

 등 굽은 사제의 그림자 사라진 적요한 낙원

 불 켜지지 않는 정원에 오렌지 나무가 자란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회랑에 걸터앉아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깜빡 잠에 들면

 달콤한 잠 속에서 출구 없는 클로이스터를 돌고 돈다

 

 아마도 너는 이곳을 빠져나가 남쪽의 광장으로 달려가 창백한 얼굴로

광장의 노파에게

 찌그러진 오렌지를 사서 기차에 오르겠지

 

 클로이스터에서 자란 동그란 햇살이 굴러떨어진다

 일시에 오지 않고 일시에 사라지지 않는 어둠

 어둠은 한 번도 늦지 않고 와서 캄캄하게 머무른다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김포 글샘 60~61 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백향옥 202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김포문예대학 23기 수료

 

[시향]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는 뉴욕 워싱턴 하이츠의 Fort Tryon Park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분관이다 미국의 조각가 조지 그레이 버나드가 프랑스 유학 중 수집한 중세 종교건축물의 일부 또는 전부와 조각품을 수집하여 세운 갤러리를 미국의 부호 록펠러 주니어가 사들인 박물관이다

 스페인 카탈로니아와 프랑스 각지에서 중세 사원을 해체하여 가져온 건축물들로, 수도원 건축 양식에 맞게 중정과 채플(예배당)과 회랑을 만들었던 것이다 록펠러가 기증한 태피스트리(Tapestry,벽 장식 카펫)들은 클로이스터스의 대표 전시물이다

 이쯤에서 백향옥 시인의 여행을 따라가 보자 중세 사원의 먼지 쌓인 낡은 벽을 밀고 들어가면 회랑에 둘러싸인 오래된 정원에 이른다 무덤과 우물이 있던 곳이다 실제 수도원은 아니므로 집필실과 기도실을 오가는 흔들리는 등불은 없다 적요가 느껴질 따름이다 등 굽은 사제의 그림자는 없지만 그 낙원에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어 위안을 받는다 회랑에 걸터앉아 잠시 눈을 붙이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클로이스터를 돌고, 전시실 미로를 따라 수많은 중세 예술품을 관람하다 보면 얼굴이 창백해진다 너는(누구라도) 이곳을 빠져나가 남쪽 광장 노파에게서 찌그러진 오렌지를 사서 기차에 오를 것이다

 회랑의 기둥 사이로 동그랗게 햇살이 굴러떨어지면 다음 기차를 오래 기다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기차를 타야 한다 “어둠은 한 번도 늦지 않고 와서 캄캄하게 머무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백향옥 시인을 쫓아 중세의 아득함이 고스란한 클로이스터로의 힐링 여행을 마치도록 하자

글 : 박정인(시인)

백향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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