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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당신

       아직 오지 않은 당신

                                          서상민

 

당신이 오기 전,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은

말이 없고

눈이 먼 데 있고

손톱을 깨물며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잎 하나만을 벌려놓은 백목련 꽃잎 위로

나비 한 마리 선회하는 오후

내가 만나고 있는 당신은

나와 함께 무작정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오니아 카페 아메리카노는

뮬레토 소년의 푸른 눈동자처럼 끝이 없고

오랜 대륙을 건너온 수세기의 바람이

식어가는 커피 위에 두근거립니다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싱싱한 종의 음표들이 소란해지고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은 좁은 어깨를 일으켜

당신이 들어온 문 밖으로 사라집니다

당신이 들어와 앉은 의자에는

조금 전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이 앉아 있었고

당신의 밝은 얼굴 뒤에는

가버린 당신의 표정이 투명합니다

당신을 만나는 사이 나는

뜯겨나간 손톱과

짓무른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떠올립니다

 

(서상민 시집 『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시인동네, 2022년)

 

[작가소개]

서상민  경기 김포 출생.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김포문예대 입문반 강사역임(2021년). 김포문인협회원. 2018년《문예바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

 

[시향]

 시인에겐 간절하게 기다리는 당신이 있다 “당신이 오기 전,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신’은 시인의 간절한 ‘바람’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은 말이 없고 게다가 먼 곳을 보고 있기도 하고 손톱을 깨물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다고도 한다 당신은 아직 망설이고 있는 상태다

“내가 만나고 있는 당신은/ 나와 함께 무작정 <당신>을 기다립니다”

 여기서 <당신>은, 나와 당신이 함께 무작정 기다리는 <당신>이므로 기다림의 대상이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화자와 당신이 이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는 <당신>은 무엇일까                                                                                  

 이오니아 카페, 시켜놓은 아메리카노는 마치 혼혈 소년의 푸른 눈동자처럼 끝이 없어 마실 수 없고, 수 세기를 통해 대륙을 건너온 바람에 커피가 식어갈 때 화자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싱싱한 종의 음표들이 소란해지고/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은 좁은 어깨를 일으켜/ 당신이 들어온 문 밖으로 사라집니다”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은 좁은 어깨를 일으켜 당신이 들어온 문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당신>에 대한 시인의 기다림은 끝도 시작도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은, 간절할 때 들어오다가, 두근거리게 하며 사라져 버린다 당신이 들어와 앉고, 당신을 만나는 사이에도 당신의 밝은 얼굴 뒤로 가버린 <당신>의 표정이 투명하게 보인다 시인의 눈 앞에는 온통 아직 오지 않은 <당신>으로 어른거린다 <당신>에 대한 시인의 기다림은 당신과 <당신>이 중첩되어 관통되고 있다

글 : 박정인(시인)

서상민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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