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지점

                                 최현우

시간의 살은 언제 갈변하는가

읽으려던 책 말고

읽었던 책이 불쑥 책기둥 복판에 끼어 있을 때

잊었던가, 잃었던가

하물며 저기

어느 날 영혼의 앞뒤를 바꾸었던 문장이 있었는데

그저 그렇게

처박혀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에서 빠져나온 종이첩으로도

따라오는 차의 앞 유리가 깨지듯

울지 않고 웃으면서

조용히 빛을 씹던 자들의

이빨 자국 모여드는 밤이 있다

현생과 전생까지 순식간에 끌려들어와

박살이 나는 찰나가 있다

날개와 허공이 마찰하는 부분은

공중의 어떤 곳을 망가뜨리는가

운다

혼자면서

혼자로 두지 않으려 했던 사람은 얼마나 두려웠나

통증 없이도 이토록 멍들 수도 있는가

(『시와 반시』2023 봄호)

[작가소개]

최현우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2014). 시집『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산문집『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

[시향]

 언제 적 읽었던 책이 쌓아 둔 책기둥 복판에 끼어 처박혀 있다 저 책 속에 “영혼의 앞뒤를 바꾸었던 문장이 있었는데” 시간의 살이 언젠가 갈변할 것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상황에 따라 작은 물건도 흉기가 될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지는 종이첩으로도/ 따라오는 차의 앞 유리가 깨지듯” 이죽이죽 웃으며 뒤에서 조용히 빛을 씹는 자들의 이빨 자국이 조용히 모여드는 밤이 있고, 현재와 과거의 일까지 순식간에 끌려 들어와 박살이 나는 찰나가 있다 그러한 순간들이 충돌 지점이 되어 상처를 내기도 한다

 “날개와 허공이 마찰하는 부분은/ 공중의 어떤 곳을 망가뜨리는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에 의해 씹히는 일은 누군가를 멍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시인은 운다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자면서/ 혼자로 두지 않으려 했던 사람은 얼마나 두려웠나”  누군가와 부딪혀 통증을 느낀 것도 아닌데 “이토록 멍들 수도 있는가” 이해가 태부족한 이즈음, 누군가 자기 잣대대로 내뱉는 말들이 누군가에겐 두려움과 상처가 될 수 있다 악플이 난무하는 오늘날, 몰이해한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하다

글 : 박정인(시인)

최현우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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