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민서현

장맛비 지나간

골목길에서 유기견을 만났다

한뎃잠이 길어져 덥수룩하게 자란

눈동자를 반쯤 덮고 있는 엉킨 속눈썹

움푹 꺼진 눈시울이 붉다

주머니 속 동전처럼 딸랑거리던 꼬리는

어미 손을 놓쳐 허방에 빠져 있고

능소화 널브러진 모퉁이 길에

꽃향기처럼 개의 체취가 낭자하다

나를 빨아들이는 개의 눈은 깊고

주춤거리는 나의 눈은 얕다

개는 무엇으로 사람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까

쉬지 않고 해대는 인간의 짖음을 알아듣기나 할까

내 그림자를 개가 밟고 지나갔다

개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풍경처럼 겹쳐져

반성 없던 나의 이력이 개와 섞이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나를 떠나 있을 것 같다

옥생각이 소나기처럼 다녀가는 아침이다

(김포문학 2022년, 192~193 페이지)

[작가소개]

민서현 김포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2018).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이사. 김포문학상 수상. 마로니에 전국 여성백일장 수상. <달詩>동인. 공저『척尺』,『시차여행』,『꽃을 매장하다』,『무화과 서약』외 다수가 있다

[시향]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마치 동반자처럼 능소화도 따라 달린다 바야흐로 능소화의 계절이다

 장맛비 그친 골목길 모퉁이, 널브러진 능소화의 주련(柱聯) 아래 유기견이 남루를 걸치고 나타났다 골목엔 꽃향기 대신 개의 체취가 낭자하다 개의 깊은 눈이 시인을 빨아들일 때, 시인은 개의 몰골에 오히려 주춤한다 저 누추한 개는 저를 버린 사람의 냄새를 기억할까? 개는 인간의 속된 짖음을 알아들을까? 귀여워서 혹은 자녀들 생떼에 못 이겨 입양했다가 성가시게 느껴지면 가차없이 내다 버리는 일은 버림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개가 시인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갈 때, “반성 없는 나의 이력이 개와 섞이고 있다” 라고 고백한다 유기견에 대한 연민과 반성 없이 외면해온 날들에 대해 마음으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림자를 밟는 것마저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오늘 시인은 그런 자신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더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해 오랫동안 자신을 떠나있을 것 같다고 한다 오로지 그 생각뿐인 아침이다 유기 동물에 대한 시인의 눈길은 능소화 향기쯤이야 애초에 몰라도 될 향기 같아 보인다

글 : 박정인(시인)

민서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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