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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안렴사공파 목사공계 김포 벽정 종회"를 찾아서

 

다시 뿌리를 찾기까지

녹음이 짙푸른 6월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목사공계 김포 벽정 종회를 찾았다. 벽정종회 회관에는 김포의 안동김씨는 경순왕부터 시작된 충열공(방경) 선조의 근영과 자손들의 가계도가 있어 종원들의 자부심과 뿌리의식의 중심이 되고 있다. 목사공계 벽정종회는 김강 선조가 낙향하면서 뿌리를 이어온 종중이다. 어디나 뿌리를 찾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역사가 되고 유지가 된다. 종중회장을 역임한 김기영 고문(74)과 뿌리찾기와 복원에 심혈을 기울인 김건회(84) 고문이 자리에 함께 했다. 2022년 새로운 김태익 종중회장과 김문교 총무가 취임하여 김포 벽정종회를 섬기며 봉사하고 있다.

안동김씨 보존 고서

종회는 “안동김씨(벽정종회) 뿌리는” 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하여 뿌리찾기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종원들에게 산교육을 제공하고 있고 종회의 보존과 역할에 힘쓰고 있다.

“2012년도에 안동김씨 벽정종회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뿌리찾기에 나선 부모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이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자료를 찾고 뿌리 찾기가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역사와 뿌리를 찾아 해답을 얻고, 뿌리를 찾고 보존해 나갈 수 있었다”고 김기영 전 종중회장은 밝혔다.

“2천여평의 종중의 묘역에는 해주목사 김공망, 장례원 사평 김서, 현령 김용려, 선교랑 김각, 김윤범, 성균진사 김강, 김성옥 선조를 위시하여 한강신도시개발로 후손들의 추모실로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150여 종원이 영면하고 계시다. 조선조의 해주목사겸 춘추관 편수관이었던 목사공 공망 선조는 퇴계원서 5년 전에 모셔왔다. 6.25때 총상을 맞아 파손된 부분이 완연한 비문인 채로 상처를 받은 그모습 그대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총탄맞은 비문이 그날의 동족상잔의 비극의 시간을 증거하고 있다”

 

근대 김연희 독립운동가 배출한 가문, 6.25로 큰 고난을 받아

근대사에서 독립운동가 김연희 애국지사(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에 소장) 를 배출한 가문이자, 동족의 상잔을 겪은 6.25의 기억이 이 종중의 역사에 완연하게 남은 상처이고 기억이다.

“우리는 6.25로 인한 연좌제로 무슨 일도 못하고 좌절을 겪었다. 남은 이들이 하다못해 면서기도 못했다. 해외여행도 못했다”

김건회 종회원

“현대 건설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신원조회에 걸려서 외국의 공사가 많아도 못갔다. 해외에 가면 2.5배 정도의 월급을 주는데도 연좌제가 있어서 못 갔다. 지금은 풀려서 교수도 하고 공무원도 하게 되었다” 고 김건회 종회원은 말했다.

“안동김씨 집안엔 홀어머니가 상당하게 많았다. 나도 6.25동이다. 생일이 2월인데 6월에 6.25가 났다. 아버지가 행방불명이다. 하여튼 홀어머니들이 많고 안동김씨가 피해와 상처가 많은 집안이다. 우리 집안도 홀어머니가 7-8명이나 되었다. 어머니는  6월에 그 일을 다 겪으시고 아직 청춘이신데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너무 고생하셨다.” 고 김기영 전 종중회장은 증언한다.

“난 보리밥, 칼국수를 지금도 안 먹는다. 쳐다도 보기 싫다. 안 먹는다. 내자식들한테도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6.25를 아이들도 알고, 그래야 한다. 태어난지 4개월에 겪었던 6.25로 인해서 너무 어렵게 살았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행불자였고, 후에 사망신고를 했다. 어머니는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우리 형님을 인천사범학교를 보냈다.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열이 너무 대단하셨다. 지금 연세로 돌아갈 연세가 아닌데 살만하니 돌아가시더라. 삶은 공평하지 않더라.  이제라도 현실이 중요하니 한문도 배우고 무엇이든 배움에 열심을 낸다”며 “6.25로 큰 고통을 받은 집안이다. 안동김씨는 큰 영향을 받아 6.25이후 탄압을 많이 받았다. 집안에서 행방불명이 되거나 북으로 간 분들이 많았다. 제일 먼저 낙향한 할아버지덕분에 남의 땅을 안 밟고 살고, 많이 배우고 살던 가문이다”고 김기영 전 종중회장은 말했다.

 

아픈 역사의 질곡을 넘어 역사교육을 통해 미래로

역사의 질곡을 넘어 벽정종회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선조들의 선양 및 지방 쓰는 법, 축문, 촌수, 항렬 등의 교육을 젊은이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충렬공 김방경 중시조를 통해 15개파로 역사를 이어오고 1680년 김포 벽정에 낙향한 김강 선조는 성균관에 유학하고 진사시험에 합격, 낙향후 후진육성에 힘썼던 목사공계 김강 할아버지는 900명의 자손이 있어 국내외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다.

380년 보호수와 벽우물터

뿌리에서 시작된 종중, 후손을 이어가며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현재 이 종중은 종손의 터를 사서 종회회관을 세우고, 산을 매입해서 종중묘역으로 조성하고 보존해오고 있다. 누구나 종원이면 종중 동산을 찾아 살아서나 사후에나 함께 할 수 있는 터를 완전하게 조성하였다.

“보존의 의무가 있다고 믿고 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집안에 있던 나무가 380년 보호수가 되었다. 종가집 나무이고 그 옆에 벽정(벽우물)이 있었다. 푸를벽(碧) 우물정(井)자로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가물어도 물이 항상 넘쳐나고 있었다. 다시 마당가에 있던 벽정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손들의 역사찾기” 원본을 찾아 다시 선명하게

성균진사 안동 김강 선조의 10세손인 김건회 종원이 글을 짓고 김성회 종원이 해석하고, 벽정종회가 세운 비명은 6월의 푸르른 김포 벽정 들녘을 굽어보고 있다. 김건회 종원은 국립도서관을 비롯해 자료찾기에 심혈을 기울여 원본을 찾아 다시 새 비문을 나란히 세웠다.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목사공계 김포벽정종회가 있기까지 선조들이 겪은 세월이 묻어있는 비석들이 묵묵하게 그 역사를 대변하고 미래로 이어가고 있다.

종회원 김건회옹은 현대건설에서 이사로 퇴직한 후 70대에도 수년여에 걸쳐 선조들의 역사와 흔적을 찾는 열정으로 국립도서관을 비롯해 집요하게 수많은 자료 찾기에 나서 선조와 종중의 뜻을 반듯하게 세우는데 대부로서의 큰 역할을 다 했다고 한다. 뿌리없는 자손은 없다.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목사공계 김포 벽정 종회의 부단한 노력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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