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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의 춤

       보헤미안의 춤

                                    안기필

 

손가락 마디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다

 

심장을 녹이는 중이다

묵언 중이다

 

자물통이 무겁게 내려앉더니

두 개의 눈꺼풀에 하얀 액체가 고여있다

움직일 수 없다

무거워 미동도 없이 실눈을 뜬다

나뭇잎에 가려 기웃거리는 베짱이가 보인다

시간이 멈추어선 비상구도 보인다

 

밥 대신 발효된 알약 하나로

배부른 하루를 견뎌 보자

 

그때에 가서

흠집 난 세상이 오면 부활을 재생시키자

 

그때까지만이라도 춤을 추자

하루를 건덩건덩 살아보자

 

(안기필 시집『갇힌 바람이 멈추어 버린 나인지도 모르게』사색의 정원 2022)

 

[작가소개]

안기필 전북 김제 출생. 군산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졸업. 계간『창작 산맥』신인상 등단(2018). 현)한국문인협회 김포시지부장. <창작산맥>회원, <시쓰는 사람들>동인, 공저:『시인은 시를 쓴다』,『골드라인, 먼 곳을 당기다』,『물 위에 사막이 있었네』,『바람의 모서리를 돌아서면』외 다수. 시집:『갇힌 바람이 멈추어 버린 나인지도 모르게』. 사)한국가요협회 부천지부장(1989), 윤관문화제 전국시낭송대회 대회장(2017~2018)역임, KBS 국악한마당 설 특집 전국민요대회 최우수상(판소리 북병창) 수상(2020).

 

[시향]

 안기필 시인의 이 시에는, 시의 화자인 한 보헤미안이 있고 그가 추는 춤이 있다 보헤미안이란 세상의 관습이나 규율을 무시하고 방랑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사람 아닌가? 더구나 ‘보헤미안의 춤’이라면 캐스터네츠 경쾌한 리듬에 맞춰 열정적으로 발을 움직이는 플라멩코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인은 몸이 처져 손가락 마디 하나 움직이기 힘든다 눈도 뜨기 싫다 자물통을 채운 듯 감은 두 개의 눈꺼풀에 하얀 액체가 고여 있다 미동도 하지 못한 채 실눈을 떴을 때 나뭇잎에 가려 기우뚱거리는 베짱이가 보인다 여기서 베짱이는 시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는 베짱이가 보이고, 시간이 멈춰버린 비상구가 보인다 밥도 먹고 싶지 않다 잘 발효된 알약 하나로 배부르게 하루를 견뎠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부활을 재생시키면 될 일이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옴짝달싹하지 않는 춤을 추기로 한다 건덩건덩 살아보자 한다

 이렇듯 현실과는 동떨어졌지만 억지로라도 마음의 자유를 누려보는 것이 보헤미안이라 우기며, 손가락 마디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을 춤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역설(paradox)을 통한 자아 풍자가 시인의 무기력을 감추고, 시에 윤기와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글 : 박정인(시인)

안기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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