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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송병호

 

낙하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쓸쓸하다

 

수백 번은 아니라도

수십 번 서성거렸던 골목 간이주점 그리고

중앙도서관, 갈피 잡지 못할 때

한 뼘씩 커가는 해그림자에

나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황무지에 싹을 틔운 30여 년

사랑하는 이들 노동을 완수한 위로랍시고

감사의 표시랍시고

카드 한 장

단아한 분홍카네이션의 초청, 나만 아는

 

감사했습니다

 

먼지에도 알갱이가 있는 것처럼

선언적 외길, 볕과 그늘

 

소유했던 무엇도 다 내려놓은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바람 든 무 구멍 숭숭한데

쓸쓸함과 고독에 대한 비유적 만남일까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송병호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상상인 시인선, 2021년)

 

[작가소개]

『예술세계』시, 『문학예술』평론 등단. 제 10회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 당선. 시집 : 『궁핍의 자유』,『환유의 법칙』,『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제14회 김포문학상 대상, 제10회 중봉조헌문학상, 제1회 강원일보 DMZ문학상. 가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김포문화재단 예술아람 창작지원금 수혜. 문인저작권옹호위원.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회장. 목사

 

[시향]

 시인은 첫 연 첫 행에서 “낙하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쓸쓸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나무들이 작심하고 틔워낸 초록 잎사귀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붉고 누렇게 변할 뿐 아니라 꽃도 열매도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때 우리는 모두 쓸쓸해 한다 하물며 ‘바람 든 무 구멍 숭숭’한 인생 가을에야 오죽하랴! 이루고 성취할 때는 힘들어도 보람 하나로 버티지만, 자리를 내려놓을 땐 그 누구라도 쓸쓸하고 외로운 법이다 시인은 평생을 목사로 재직해 왔다 학창 시절, 골목 간이주점과 중앙도서관 사이를 서성이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그때 시인은 이방인이었다고 회고한다

 황무지에 교회를 개척한 지 30여 년, ‘사랑하는 이들 노동을 완수한’ 위로와 감사의 뜻으로, 단아한 분홍카네이션과 카드 한 장의 초대에 “감사했습니다”라고 답례하고 있다 시인만 아는 분의 초대라면 세상에 딱 한 사람, 그분일 것이다

 “하찮은 먼지에도 알갱이가 있는 것처럼” 목회의 외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시인은 볕과 그늘을 함께 겪었다 오직 예수님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만을 가슴에 품어온 30여 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형을 감당하신 예수님이 거짓 예언자로 모함받고, 배신당하고, 희생되고, 버림받았을 때의 고독감을 헤아리며, 정년퇴임이지만 목사 직분을 내려놓는 시인의 쓸쓸함을 비유적으로 상기하고 있다

 괄호의 사전적 뜻은 ‘단어, 숫자, 문장 등의 앞뒤를 막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기호’다 지금까지 시인 송병호라는 이름 뒤 괄호 속엔 (목사)라는 직분이 차지했지만, 시인의 또 다른 생의 이름 뒤 괄호(    )에는 어떤 다음을 예약하게 될까?

글 : 박정인(시인)

송병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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