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시인길

                                   박미림

김포공원묘지 승가로 58번길

명예 도로 한하운시인길

때 이른 잠자리 흥겹게 날아

피안의 길을 인도한다

하운 노랫소리 서럽게 스러진다

가늘고 긴 바람이 이정표에 잠시 쉬어간다

천형天刑보다 더 아픈 고문의

병고, 길고 길었을 상처를 생각하니

바람 앞에서 숙연해진다

말갛게 가라앉혀 놓은 듯한 하늘을

한참을 올려다보다 노을이 쏟아지기 전

비문을 바라본다

김포공원묘지 183

반쯤 누운 해그림자

천천히 발길 재촉하는 시인의 길

(박미림 시집, 『애기봉 연가』, 도서출판 예맥, 2021년)

[작가소개]

박미림 전남 해남 출생. 시집 『벽을 바라보다』 (2002), 『마네킹』(2004), 『눈물은 소리내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다』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2006),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2013),『붉은 꽃 지는 저녁』가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2018), 『애기봉 연가』김포문화재단 [예술알람] 문학창작지원금(2021). 공저『꽃, 비틀거리는 날이면』(2013),『척尺』(2018), 『바람의 모서리를 돌아서면』(2020)외 다수. 김포문학상 ･ 항공문학상 ･ 중봉문학상 문화예술유공표창 경기도지사상(2019) 제33회 김포시문화상 예술부문(2021) 수상. 한국문인협회 김포시지부 회장 역임. 달詩 ･ 징 ･ 시쓰는사람들 동인

[시향]

 2017년 5월 장릉공원묘지 입구에서부터 한하운 시인 유택 가는 길이, ‘한하운시인길’로 명명된 지 올해로 6년이 되었다 살아생전 한하운 시인이 감내해야 했던 천형天刑의 고통과 한이 위로 받기를 바라는 박미림 시인의 눈엔 겹눈의 잠자리가 유택 가는 길을 흥겹게 인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 이른 잠자리 흥겹게 날아/ 피안의 길을 인도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하운시인길’이 명예 도로로 지정이 되니 시인의 눈에 펼쳐진 하늘이 비로소 “말갛게 가라앉혀 놓은 듯” 보인다

 한하운은 1949년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 월간 종합잡지 <신천지> 4월호에 ‘전라도 길> 외 12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이 된다 같은 해 5월, 첫시집 『한하운시초』(정음사)를 낸다 이 시집의 표지 안쪽에는 시인의 수인手印이 찍혀있다 그의 시 한 편을 보자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손가락 한 마디> 전문

 처절한 고통과 슬픔을 탄식하는 대신, 초연하게 승화시켜 내는 한하운 시인의 문학적 업적은 오래 기억되어야 마땅하며, 후대에 널리 알려야 할 의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에게 있다고 본다

 1950년대 전후문학의 큰 틀에서 볼 때, 한하운의 시가 ’소수자 문학‘을 대표한다하겠다 최근에 와서는 퀴어 소설 등이 당당히 인정받고 있지만, 70여 년 전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한하운 시인이 진실로 앞서가는 지식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문둥병이란 천형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시인을 찾아, 박미림 시인이 숙연히 비문을 바라보고 있음도 다 그러한 연유이리라

글 : 박정인(시인)

박미림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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