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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사이에서

           초록 사이에서

                                        김윤주

웃음이 생각나지 않아요

초록 사이에 유독 붉은 꽃 화분을 가져왔어요

 

특별할 것 없는 하루살이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십 년째 같은 말을 합니다

 

모든 것이 수레바퀴 구르듯 잘 굴러갑니다

입 안에서 구르기만 하고 말이 나오지 않아요

입술은 일자 눈 한 곳만 바라봅니다

 

물을 주어야겠어요 웃음이 활짝픽요

 

바구니에 듬직하게 앉아서 나를

출근시키고

퇴근시키고

긴 복도를 홀로 지키며 활짝 웃는 화분

 

웃음을 찾고 싶어요 말을 하고 싶어요

가슴에서 끓는 말을 건져 올릴 빨간 꽃이 필요해요

주머니에 있나요 웃음보

문 앞에 있다고요 제라늄이요

사슴같이 웃나요

기린처럼 웃나요

똥꼬가 빨간 원숭이요

엉덩이 빨간 원숭이가 웃고 있습니다

 

미소를 짓자 손보다 입술을 내미는 붉은 꽃

목구멍을 타고 말이 나왔습니다

안녕,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김포문학』39호,182~183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명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수료. 2021년 김포문학상 시 부문 신인상 대한민국 창작미술대전 가작 수상 외 다수. 현재 논술학원운영

 

[시향]

 웃음이 생각나지 않는 나날을 겪어본 적 있으신지요? 시인은 기분전환을 위해 붉은 꽃을 머금은, 초록 잎 무성한 화분을 복도에 가져다 놓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온 지 이십 년입니다 수레바퀴처럼 매일매일은 잘도 굴러가지만 시인의 마음 속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나눌 데가 없습니다 화분의 꽃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나만 바라봅니다

‘물을 주어야겠어요 웃음이 활짝 피게요’

 꽃의 말을 건져 올리려 꽃에게 물을 줍니다 바구니에 담긴 화초는 시인이 출 퇴근하는 것을 보고, 긴 복도를 지키다 어느새 활짝 피어났습니다 시인에게도 가슴속에 들끓는 말을 건져 올릴 빨간 꽃 같은 대화상대가 필요합니다 웃음보가 있을 곳을 유추해 봅니다 주머니에? 문 앞 제라늄에? 원숭이 똥꼬까지 생각해봐도 웃음보가 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소를 머금고 화초를 보자, 꽃이 빨갛게 입술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제야 시인도 말과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초록 잎 사이, 빨간 제라늄 입술이 시인의 말이자 웃음인 듯합니다

글 : 박정인(시인)

김윤주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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