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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청갓

              얼청갓

                                      유영신

 

점 하나가

떨어졌다

시멘트 마당 틈새

갓 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았다

햇빛과 별빛을 보며 빨리 크고 싶었다

투실투실한 살갗에

보랏빛 물이 들고 키가 한 자쯤 컸다

자라면서 줄기와 잎맥이 도드라져

까칠한 듯 은은한 듯 몸피를 키웠다

늦가을 자랄 대로 자라

김장 날 속 찬 무 배추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어디서 왔는지 중요하지 않다

궤적의 시간

나의 출생은 내 뜻이 아니지만 운명을 안 후

사랑을 들였으니

아린 향기로 이름 불려지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첫의 떨림처럼

너의 색이 입히는 날 진한 양념이 되라고

집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 때쯤 숙성이 된다고

억세게 살아온 날

소금 세례를 받고

울컥울컥 물기를 쏟는다

뻣뻣함이 숨죽여지며

톡 쏘는 매운 성질

파 마늘 고춧가루 젓갈과 버무려져

내가 되고 있다

(김포문학 35호(2018), 193~194쪽)

 

[작가소개]

유영신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인협회 사무차장 역임, 김포문예대학 15~18기 수료, 한성백제문화제 은상수상(2010), 강서백일장 다수 입상, 김포백일장 다수 입상, 제1회 김포문학 신인상(2016)

 

[시향]

 시멘트 마당 틈새에서 자란 얼청갓은 ‘점’ 하나로 생명이 시작되었다 햇빛과 별빛을 보며 투실투실한 살갗에 보랏빛 물이 들고, 자라면서 까칠한 듯 은은한 듯 몸피를 키웠다 얼청갓의 삶은 인생을 닮았다 시멘트 마당 틈새에서 왔건, 넓은 텃밭에서 왔건 “어디서 왔는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출생은 내 뜻이 아니지만 운명을 안 후/ 사랑을 들였으니/ 아린 향기로 이름 불려지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첫 만남의 떨림처럼 너의 색이 내게 입히는 날 진한 양념이 되리라 쉽게 다짐했지만, 집집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 때쯤에야 숙성이 된다는 사실을 느낀다 억세게 살아온 날, 소금 세례를 받고 뻣뻣함이 숨죽여지며 생의 참맛인 간을 알게 되고, 톡 쏘는 매운 성질이 파 마늘 고춧가루 젓갈과 버무려져 비로소 “내가 되고 있다”고, 시인은 얼청갓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얼청갓의 운명에 화자의 삶을 이토록 유연하게 녹여 넣다니......

글 : 박정인(시인)

유영신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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