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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望草)대 승첩

      망초(望草)대 승첩

                                     채움

 

깃발이 펄럭인다

비탈길 가장자리와 공터에 즐비한 저 환호성

볕의 갈채 뜨겁다

다른 풀들이 무성했던 자리에 언제 쳐들어와

고지를 점령하고

깃대를 높이 들어 올렸을까

 

저 열렬한 태도에

사방의 눈들이 모여들어 집중한다

황홀의 절정이다

아이도 깃대 하나 들고 아장아장 걸어나온다

승전고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풀들의 고요 속에 전쟁

길을 내려는 숨은 대치

질긴 습성으로 칭칭 감고 밟고 오르며 먹고 먹히는

땅 빼앗기 다툼이 생생하다

 

사람들도 풀밭을 무력으로 침입하면

품은 단도를 뽑아 들고 무찌르지만

조용히 타협하며 다가서면 하나둘 곁을 열어준다

풀과 나는 살 썩는 것까지 같아도 부피만은 다르다

 

방치가 끌어들인 풀씨들 한 군락을 이루었다

깃발처럼 길어 올린

7월의 한낮

샛노란 꽃술의 내력을 담은 망초꽃이 향기롭다

반짝이는 눈들이 고지에 가득하다

(김포문학 36호(2019) 231~232쪽)

 

[작가소개]

채움(채미자)  충남 청양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창작수필 회원, 동서문학회 회원, 2004년 창작수필 등단. 2006년 동서식품주관 동서문학 수필 입상, 2012년 동서문학 시부문 가작 상. 2017년 대구매일시니어 시 부문 우수상, 2018년 제50회 열린 시학 신인작품상 등단. 2013년 산문집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발간

 

[시향]

 요즈음은 도심의 숲속이든 아파트 경사지든 어디서나 망초 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탈길 가장자리와 공터에 즐비한 저 환호성 / 볕의 갈채 뜨겁다”

망초 꽃이 즐비하게 피어 있는 모습에서, 시인은 꽃이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더구나 뜨거운 볕이 갈채를 보낸다고도 한다 그렇다 한 장소에서 어떤 풀꽃이 피었다 잦아들면 그 다음엔 마치 전세계약이라도 미리 해 두었던 것처럼 또 다른 풀이나 꽃들이 일제히 일어난다 이른 봄 언덕배기에 봄까치꽃들이 한차례 다녀가고 나니 어떤 타협이라도 한 듯 다른 풀들이 그 자리를 빼곡히 메웠다가, 지금은 망초꽃이 승전가를 부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시인은 “땅 빼앗기 다툼이 생생하다”고 말한다 “사람들도 풀밭을 무력으로 침입하면/ 품은 단도를 뽑아 들고 무찌르지만/ 조용히 타협하며 다가서면 하나둘 곁을 열어준다”고 단언하고 있다 망초는 지난 봄 내내 조용히 풀밭에 다가서서 타협의 문을 두드렸나보다 풀꽃들의 삶을  되돌아보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연의 이치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친다

글 : 박정인(시인)

채움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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