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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 호텔

       프로크루스테스* 호텔

                                               김부회

찬바람이 바지랑대에 걸려있다

날아간 새 몇 마리의 하늘을 훨훨 걷어내면

까만 허공에 그들어둠에 널어둔

빈한한 가계의 내력이 휑하니 펄럭거린다

쪼그라든 등을 겨우 냉골에 붙일 때쯤

한 뼘 복도를 비틀거리는 온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발자국들

누구나 코끼리 한 마리쯤 어깨에 매달려있다며 

하루치 주술을 왼다

숨구멍조차 없는 방 안

변기 바로 옆 침대에 누워 길이에 발맞추는 키 재기

공친 하루의 귓속을 후벼 파는 

옆방 코 고는 소리

칼바람에 예리하게 찢겨나간 벌집이다

그 얄팍한 벽에 둘러싸인 또 다른 벽에 스스로 길들어

다리 못 펴는 밥상은 

어느 모진 날로부터 별다른 혐의 없이 입실된 채

체크아웃 날짜도 모르는

진정한 앉은뱅이가 되었다

별빛 숨어있는 쪽창 너머 새벽이

밤새 잘린 발목을 도마뱀처럼 되돌려주는 이곳

 

*프로크루스테스 도둑이 잡아 온 사람의 다리를 철 침대에 맞춰 잘라냈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

(김부회 시집, <러시안 룰렛>, 가온 2021)

[작가 소개]

김부회 중봉문학상 대상문학세계 문학상(문학평론 부문)대상시집『시답지 않은 소리』(2014) 출간평론집『시는 물이다』(2019) 출간김포신문「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014-현재 집필 중,  월간《모던포엠》 ‘상상력을 확장하는 시 세 편’, (문학평론) 2015-현재 집필 중계간《문예바다》부주간월간《모던포엠》편집위원《사색의 정원》 편집주간

 

 [시향]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도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데려와 철 침대에 눕히고 침대 길이보다 다리가 짧으면 잡아 늘여 죽이고길면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철 침대 길이를 조절할 수도 있었다지요

  시인의 눈에 포착된 벌집 호텔에는힘든 삶들이 생의 추운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습니다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 문제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대입시켜 봐도 될까요()가 보장된 사람을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눕히고다리를 잘라내듯 부를 환수하여 다리를 잡아 늘여주듯 빈곤에 처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할지라도일자리가 없다면 결국 부의 평준화는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전능한 정책으로 빈부격차에 처한 이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빈한한 가계의 내력을 지닌 사람들이 ‘쪼그라든 등을 냉골에 붙일 때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이 좁은 복도에 온기를 보태며 들어옵니다 코끼리만 한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졌습니다 주술을 외듯 푸념을 흘립니다 일용직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돌아와변기 옆 침대에 누워보지만 옆방에서의 코고는 소리가 귀를 후벼 팝니다 “칼바람에 예리하게 찢겨나간 벌집이다”라고 한 시인의 말에서이 집은 얇은 벽으로 연결된 벌집이거나 고시원쯤이겠습니다 밥상은 다리도 펼 수 없는 방에 ‘별다른 혐의 없이 입실 된 채체크아웃 날짜도 모르는진정한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새벽이면 밤새 잘려버린 것 같던 발목을 도마뱀의 꼬리처럼 다시 되돌려 받은 기분입니다 그 다리로 또 일을 찾아 나서겠지요 이곳이야말로 현대판 프로크루스테스 호텔입니다 시인의 풍자가 뇌리에 오래 남습니다

글 박정인(시인)

김부회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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