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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차려준 식사의 의미 :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남이 해주는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미디어와 예술 3화
  • 스튜디오메타 대표 김희대
  • 승인 2022.02.0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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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혼영……. 홀로 먹고 홀로 마시고 홀로 즐기는 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일상 속에 아주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코로나 시대로 인해 자율적인 혼자 밥 먹기가 아닌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강제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오래전 ‘남극의 쉐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조차 살아남기 어려운 남극에서 8명의 남극 관측 탐험대가 남극기지에서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필자가 느닷없이 이 영화가 생각난 이유는 오늘날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식사하는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사뭇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 남극의 쉐프의 주인공인 니시무라 준은 본래 해상보완청 소속의 조리담당이었으나 남극으로 발령가기로 했던 선임자가 사고로 다치면서 대신 남극으로 향하게 된다.

그는 남극기지에서 생활하는 대원들을 위해 그들이 먹고싶어하는 온갖 요리를 대접한다. 그러나 기지동료들은 엄청난 추위와 반복되는 남극기지의 생활에 지쳐 니시무라의 정성 어린 식사자리를 그다지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극 중에 파견되어 남극으로 오게 된 엔지니어인 미시코바 켄은 좌천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는 남극기지가 누구나 유쾌하게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고립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설정은 한편으로는 현시대 우리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식자재에 의존하는 모습이나 고립된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무료함을 달래보려 눈밭에서 술래잡기, 이유 없이 버터를 할짝댄다거나 본 영화의 주제 의식을 표방하는 갖가지 요리를 시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멈춘 것 같은 시간은 어떻게라도 인간답게 보내보려는 안간힘. 즉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생존본능 그 자체인듯하다.

여하튼, 본 영화의 주인공인 니시무라 또한 점차 남극기지 식구들과 동화되어 한없이 깔끔하고 친절한 조리사에서 지저분하고 의욕없는 모습이 되어간다.

그러다 한 사건으로 인해 딸이 준 목걸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요리를 하지 않는 파업상태에 들어간다. 그가 파업에 들어가자 남극기지 탐사원들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고군 분투한다.

생각해보라, 가족중에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요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엉성하고 우스운 모습의 닭튀김이 파업을 끝낸 니시무라 앞에 놓이고 묘한 공기속에 남극대원들의 식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그 식사는 니시무라에게 남극에 와서 처음 남이 해준 음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너무나도 당연하게 남이 해준 밥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밥에는 정성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나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받아내느라, 그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잊고 지낸다. 아니 이제는 그 함께하는 식사가 무색해질 정도로 그 문화자체를 대체하는 수많은 나 홀로 하는 선택지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먹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누군가의 애정이 가득 담긴 식사는 다시금 집밖을 나가게 할 수 있는 매우 신성하고 주요한 의식 같은 것은 아닐까?

 

*필자소개

김희대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 석사를 졸업하고 <스튜디오메타 미디어랩>에서 영화, 광고, 미디어아트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창작자이다.

스튜디오메타 대표 김희대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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