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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힌 것들에 대하여

   잊힌 것들에 대하여

                                                                                       송병호

 

점점 단단해지는 풋것들로

여름이 출시된다

주 종목은 목줄에 매달린 KF94 마스크

콧등에 걸치고 간다

챙 모자를 치키고 이마를 훔치고 호흡을 고르고

백사장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손 선풍기와 리조트 분양광고가 활활 타는 플라스틱 부채

하얗게 절인 눈썹 선의 간기

파도를 건너온 네 별 내 별의 원자재들이다

시인의 시중을 돕던 하청업자였다

 

올여름 휴가는 남도 다도해

허풍일수록 볼륨을 높이는 법

 

에어컨 콘센트를 분리하고 초인종을 잠그고

1000cc 키를 꽂고

휴대전화 카카오 내비 검색기를 틀고

새벽을 젖히자 전조등에 달라붙어 실신한

하루살이의 헝클어진 붉은 입술

바퀴벌레가 라면 국물에 빠져 죽었다는

그 민박집, 시치미를 뚝 떼고 있네

 

허름한 재고가 출시된 여분

흠집을 모아서 질 좋은 여름을 생산해내는 일은

70% 개인 방역수칙과 30% 백신의 몫이다

 

불을 다스리는 것이 냉수뿐일지라도

장미는 아픈 쪽에 가시를 돋우듯이

까만 문맹으로 잊힌 올여름

어느 해보다 뜨겁게 소비해야겠다

 

시접 접힌 턱 마스크 D-day에 맞춘다

 

송병호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작가소개]

『예술세계』시, 『문학예술〮』평론 등단, 제10회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 당선, 시집 『궁핍의 자유』『환유의 법칙』〮『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제14회 김포문학상 대상, 제10회 중봉조헌문학상, 제1회 강원일보 DMZ문학상, 가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김포문화재단 예술아람 창작지원금 수혜, 문인저작권옹호위원,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회장, 목사

 

[시향]

COVID-19 펜데믹 상황이 변이를 거듭하며 전 세계 인류가 공포에 휩싸여 마치 인권을 빼앗긴 것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음에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시간은 마스크 쓴 여름을 데리고 벌써 두 번이나 다녀갔습니다 시인은 KF 94 같은, ‘점점 단단해지는 풋것들로 여름이 출시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챙 모자를 치키고 이마를 훔치고 호흡을 고르고 백사장이 걸어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눈썹에 하얗게 핀 소금기, 국적불명의 손 선풍기와 광고를 실은 플라스틱 부채가 여름과 씨름을 했다네요 이것들은 시인도 자주 사용한 하청업자였답니다

올 여름 휴가는 남해 다도해라고 허풍을 쳤습니다 에어컨 콘센트를 뽑고, 초인종을 잠그고, 1000cc 차에 시동을 걸고, 카카오 내비를 틀어 새벽을 열고 달려간 곳이 허름한 민박집이었습니다 라면 국물에 바퀴벌레가 빠져 죽어 있던 그 민박집은, 반성도 없이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소하고도 행복했던 시간들은 이제 ‘잊힌 것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느닷없이 몰아닥친 코로나로 인해 전국적으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방역이 불가한 허름한 재고가 출몰한 적도 있었지만,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마스크 열심히 쓰고 백신 맞는 방법 외엔 비책이 없겠지요 시인은, 불을 끄려면 냉수뿐인 걸 알고 있지만, 장미가 아픈 쪽에 가시를 돋우듯이, 바깥과 단절된 채 문맹으로 올 여름을 보냈으니 마스크 벗게 될, D-day까지 어느 해보다 뜨겁게 시간을 소비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갑갑한 상황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잊힌 것들은 언제 우리 곁으로 돌아올까요

글 : 박정인(시인)

송병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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