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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52>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전 읽기
   
▲ 오강현 시의원

셔울 발긔 다래 
밤 드리 노니다가 
드러자 자리 보곤 
가라리 네히어라. 
둘은 내해엇고                
들흔 뉘해언고.                
본디 내해다마른 
아자날 엇디하릿고. 
 
<함께 감상하기>
 
  이 노래는 8구체 향가인 처용가(處容歌)로 현대어로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의 밝은 달에/ 밤 늦도록 놀며 다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은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 노래의 작가는 처용(處容)으로 창작 연대를 확인해 보면 신라시대로 올라간다. 주술적 성격의 노래로 아내를 범(犯)한 역신(疫神)을 쫓는 노래로 벽사진경(辟邪進慶) 즉, 간사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는 노래로 연희의 성격을 띠고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전승되었다.
 
  처용가는 역신(疫神)을 물리치기 위한 축사(逐邪) 즉 사악한 귀신을 쫓는 노래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집단적인 주술성을 띠고 있다. 이 노래의 전반 4구는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역신(疫神)의 침범을, 후반 4구는 역신에 대한 처용의 관용 또는 체념의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된 설화에 의하면, 결국 역신은 처용의 관용, 너그러운 태도에 감복하는데, 이리하여 처용의 형상이 벽사진경(辟邪進慶)의 효력을 지니게 되었다 한다. 이로 인해, 처용은 무당으로, 처용의 형상을 부적으로 이해되기도 함으로써 이를 무가(巫歌)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노래의 절정은 7행과 8행이다. 이는 체념적인 주사(呪辭)로 볼 수 있으나 오히려 처용의 상황 즉, 초극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으로 후대로 오면서 고려가요 등에서 벽사(辟邪)의 위력으로 발전한 것은 그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를 무가(巫歌)의 일종으로 보아 악신을 보내는 ‘뒷전풀이’로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속에서는 악신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내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24절기 중에서 동지(冬至)가 있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 상대적으로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특히 이 날은 붉은 팥죽을 먹는 날로 알고 있을 것이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인만큼 음기가 강한 날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붉은 양색을 지닌 팥죽을 쒀 먹어 귀신으로부터 몸과 집을 보호하고자 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동짓날이면 붉은색이 잡귀를 쫓는다고 해 동짓날에 집안 곳곳에 팥을 뿌리고 팥죽을 먹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먹는 사람의 나이만큼 팥죽에 넣어 먹었다. 다음 해가 되는 날 또는 작은 설이라 불리는 동지는 이 날을 기점으로 태양이 다시 부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옛 사람들은 이 때문에 동지가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샤머니즘을 믿든 믿지 않든 그 어느 때보다 팥죽이 먹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의 좋지 않은 일들을 물리치고 작은 설을 지나 한 살 더 먹고 새로운 새해에는 희망만 가득한 한 해를 맞고 싶은 열망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악귀와 액운을 내쫓고 행복과 건강이 가득한 신축년(辛丑年), 하얀 소의 새해를 맞이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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