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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24>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
   
▲ 오강현 시의원

이시렴 브디 가겠느냐? 아니 가지는 못하겠느냐?
무단(無端)이 슬튼야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는 뜻을 닐러라.  
 
<함께 감상하기>
 
조선 성종의 시조로 ‘있어 달라. 부디 가겠느냐? 아니 가지는 못하겠느냐? 공연히 내가 싫어졌느냐? 남이 권하는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너무 애달프구나. 가는 뜻이나 분명히 말해 보려무나’라는 내용의 시조로 임금이 신하에게 바친 유일한 노래이다.
 
성종 때 유호인이라는 신하가 고향에 계신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자, 임금, 즉 성종이 여러 번 만류하다가 할 수 없이 친히 주연을 베풀어 술을 권하면서 읊은 작품이다. 총애하는 신하를 꼭 곁에 두고자 하는 군주의 간곡한 신하 사랑의 정이 넘쳐흐르는 작품이다. 군신 관계를 초월한 성종의 인간다운 면모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중장의 시어 ‘무단(無端)’은 ‘아무 까닭 없이’, ‘공연히’라는 의미이다. 이 작품은 신하를 회유하기 때문에 회유적(回遊的)이며 군신유의(君臣有義)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략적으로 주제는 신하를 떠나보내는 임금의 애닮은 마음인 석별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임금까지 회유를 한 유호인은 어떤 인물일까. 대략 신하 유호인을 살펴보면 세종 27년(1445년)에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출생하여 세조8년(1462년) 임오년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성종3년 점필재 김종직을 따라 두류산을 유람하였다. 성종5년(1474년) 갑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됩니다. 성종7년에 봉상시 부봉사, 홍문관 박사가 된다. 성종10년(1479년)에 홍문관 수찬이 되고 그 해 거창현감으로 제수된다. 성종13년(1482년) 부친상을 당하고 여름에 황산곡집을 쓰고, 성종18년(1487년) 모친의 봉양을 위해 사직을 했으나, 그 해 의성현령이 되어 4년 이상 봉직하는 등 성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이후 홍문관 교리, 사헌부 장령, 합천군수 등을 역임한 후 성종 25년(1494년) 4월 지병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임금의 명령과 신하의 복종 관계 즉 수직적 관계의 군신 관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글은 성종의 글로 신하 즉 유호인에게 구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신하는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의 늙은 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벼슬을 사임을 한다. 임금과 부모가 같은 격이었던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이런 상황은 참 흥미롭다. 결국 유호인은 어머니를 선택하게 되지만 그 기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 한다.
 
임금이 신하에게 바친 유일한 시조인 이 작품을 보면서 유호인이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성종의 신하를 대하는 태도에 주목이 된다. 그 어느 시대보다 권위가 살아있던 유교 사회에서 성종의 태도는 파격이다. 적어도 신하 유호인에게만큼은 탈권위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나라에 필요한 인재 등용을 위해 이렇듯 임금은 한 없이 낮아 질 수도 있다는 것. 백성을,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권위는 권위 따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럴 때 임금의 권위는 더 높아지는 것이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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