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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이야기(수필)

                                          배추이야기(수필)
                                                                                             남명모 

  매년 8월15일은 특별한 날이다. 온 국민이 다 특별하게 여기는 날이지만 나로서는‘배추 파종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보다 빠르면 날씨가 더워 병충해가 발생하고, 늦으면 통이 차기 전에 추위가 온다고 한다.
  배추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어떤 화초에 견줄 수 없이 예뻤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점점 속이 차오르는 배추를 보면 밭을 떠나기가 싫었다. 김장철에 때맞춰 누님과 여동생들이 찾아와 애써 가꾼 배추를‘금추’라며 실어들 갔다.
  그즈음 어떤 여인이 자동차에서 내리더니 느닷없이 배추 15포기를 내놓으라고 한다.“시장에서 최고 좋은 배추 한 포기에 2천 원 하던데 그 가격대로 드릴 테니 파세요.” 하지 않은가.  최고 좋은 배추? 나는 최고란 말 한마디에 혼이 빠졌는지도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가꾼 배추를 최고라 알아주는 사람에게 무심할 수 없어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아내도 나와 생각이 같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이 지나 함박눈이 온천지에 덮이던 날, 아내는 봉투하나를 내밀었다. 아무리 궁리 해봐도 배추판돈은 마땅히 쓸 곳을 찾을 수가 없다고,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아무렇게나 써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쓰면 좋을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데 아내“내년 농자금으로 씁시다!”
  농자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그래, 이 돈으로 발효퇴비를 사면 10포대도 더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내년에도‘최고 좋은 배추’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없이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내의 미소가 눈을 업은 햇살처럼 밝고 환히 번진다. (배추이야기 부분)
 
작가 프로필
[수필춘추] 수필 등단, 수필가, 사)한국문인협회회원, 김포문인협회이사 역임, 김포문학상, 우정사업주관 ‘테마편지쓰기’ 우정사업본부장상을 수상했다. 여러 문예지에 꾸준히 작품발표
 
시향詩香
김장철이다. 금년에는 잦은 태풍으로 배추가 그야말로 금추라고 한다. 그렇다고 김장 안하겠다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김장은 김장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겨우내 양식이다. 어려웠던 시절 고구마 몇 개와 끼니를 맞바꾸던 곤궁의 시절, 호랑이 담배 피던 이야기라고 말할지 몰라도 꼽아 보면 몇 십 년 전 초라한 곡간에 흉터처럼 턱 자리 잡고 있다. 추수는 농부의 기쁨, 자식 키우듯 키워낸 보람이다. 비바람에 물꼬잡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어린 것들 고뿔 신열에 하얀 밤을 등으로 새는 부모와 같은, 그래서 최고가 되는 것, 어쩌면 당연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행간마다 눈물과 애간장이 범벅이다. 배추 한 포기가 최고라는 바람 같은 간지러운 말 한마디에 그만 자기 영혼까지 내주고 마는 따뜻한 성정, 알아준다는 것, 인정해 준다는 것, 장사꾼은 밑지고 판다지만 농부는 거저 내준다. 망중한 부부는 소복이 내려앉은 새하얀 계절의 무늬를 내다보며 명년 농사에 무지개를 꿈꾼다. 선뜻 꼬깃한 쌈지를 내민 이쁜 아내의 심성만큼이나 미덥고 따듯하다.  글 : 송병호 [시인]

남명모 수필가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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