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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가지
   
▲ 한익수 소장

                                     
우리 집 앞에 느티나무가 하나 서있다. 2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내 키만했던 느티나무가 이제 아파트 3층 높이까지 올라와 눈앞에 서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느티나무다.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나뭇가지 위에 촘촘히 달린 이파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파란 잎새를 보고 있노라면 생동감이 넘치고 머리도 맑아진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창가의 느티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소박하면서도 욕심이 없는 느티나무, 다른 나무들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맛있는 열매를 만들지도 않지만 사계절 아름답다. 봄이면 노란 새싹이 돋아나 생동감을 불어 넣어 준다.

여름이면 넓게 펴져 있는 가지에 이파리가 무성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매미, 쓰르라미, 까치의 놀이터다. 가을이면 정갈한 나뭇잎이 하나하나 갈색으로 변해서 아름다운 단풍으로 단장한다. 한 겨울 잎을 모두 떨군 앙상한 가지 위에는 눈꽃이 핀다.

어느덧 20여 년간을 함께 하며 정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태풍 ‘링링’에 못 견디고 큰 가지 하나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느티나무 앞에 서면 한쪽이 허전하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아파트 단지를 한번 둘러보았다.

관리사무실 앞에 서 있던 키 큰 소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넘어졌다. 209동 길모퉁이에 있던 커다란 잣나무가 넘어져 길을 가로막고 있다. 골목마다 부러진 잔가지들과 나뭇잎으로 단지 내는 온통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태풍은 곳곳에 많은 피해를 남기고 지나갔다.
나무는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많은 가지들 중에 왜 그 가지만 부러졌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가지들은 모두 위쪽을 향하고 있는데 부러진 가지는 유독 창가 쪽을 향하여 가로질러 서 있었다.

다른 가지들은 세찬 바람을 서로 나누어 받았는데 그 가지는 혼자 힘겹게 버티다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란 말이 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도 튀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 보조를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다.

곧게 잘 자라던 소나무는 왜 넘어졌을까? 나무가 높게 자라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나무 크기에 비해 뿌리가 약하면 언젠가는 넘어지기 마련이다. 사람도 크게 되려면 기본부터 갖추어야 한다. 지식도 성실과 바른 인성 위에 쌓이지 않으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잣나무는 서 있는 위치 때문에 넘어졌다. 길모퉁이는 다른 곳보다 바람의 세기가 크다. 잎이 무성한 잣나무가 모퉁이에 서 있다가 극한 상황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설자리를 알아야 한다.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에 있다가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본다.

나무는 동물보다 장수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한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화이트 마운틴에 있는 아리스타타잣나무로 4,580년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리에 있는 1,400년 된 주목나무로 알려져 있다.

수명이 긴 나무는 대부분 추운 고산지대에서 비바람에 시달리며 자란 나무들이다. 높이 자라는 나무는 가지나 잎이 많지 않고 단출하다. 사람도 고난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강하다.

계절의 변화가 있는 곳에서 좋은 공기, 맑은 물을 마시며 스스로 재배한 농산물을 먹고, 많이 움직이며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교적 장수한다. 동물은 처음부터 복잡한 기관이 만들어져 노쇠해 가지만, 나무는 어려서부터 뿌리, 줄기, 가지 등 각 기관을 한꺼번에 만들지 않고 살아가면서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며 커간다.

나무속에 장수의 지혜가 숨어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언제나 나무가 함께했다. 지팡이, 망치로부터 시작해서 공구, 기계 등 인류 문명은 나무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무는 지혜의 보고다. 말로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몸으로 표현하며 우직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비록 가지 하나는 잃었지만 오늘도 말없이 서 있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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