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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족국가 "속로불사국"을 김포의 역사문화로 재정립해야
   
▲ 이회수(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김포새희망포럼 대표)

중국의 진수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마한편⌟에 따르면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삼한시대로 기록되는 기원 1세기에서 서기 3세기 사이에 김포반도에 ‘속로불사국’이란 고대부족국가가 오랫동안 존재했다고 한다. 삼한시대는 청동기 시대에 마한, 진한, 변한 등 3국이 한반도 남쪽지역에서 각축을 벌이던 부족국가 시대를 말한다. ‘속로불사국‘은 지금의 김포시 대곶면 수안산 일대에 자리잡았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경상도 남쪽지역에 각각 12개 부족국가를 거느렸던 진한, 변한과는 달리 삼한시대에 제일 큰 부족연합국가인 마한에 속했던 54개 부족국가중의 하나이다.

마한은 한반도 중부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시대 국가중의 하나로 대체로 기원전 1세기 전에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이 뭉친 정치집단을 통칭하는데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로서 모두 합하면 10여만 호가 된다고 한다. 김포지역에 있었던 ‘속로불사국’은 마한의 소국의 하나로서 ‘속로’는 수안현(守安縣)의 옛 이름인 수이홀(首爾忽), 불사는 통진현의 예전 명칭인 별사파의현(別史波衣縣)의 별사(別史)와 동음으로 보고 두 현(縣) 지역이 일종의 부족연맹국가였으나 백제에 병합된 뒤 각각 현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마한 대⦁소국에 관한 분석(국사관 논총 24)⌟에 따르면 소국의 규모를 1.100∼1,900가(家)라 했는데 삼한시대 김포지역에 1,200여 가(家)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수안산과 대명포구가 있는 대곶면이 고대국가 속로불사국의 수도

한남정맥의 마지막 줄기인 가현산, 수안산, 문수산이 뻗어내리고 삼면이 강과 바다로 둘러쌓인 김포반도에 위치했던 속로불사국의 ‘속로’는 대곶⦁양곡(예전의 수안현)을 중심으로 검단, 김포, 고촌지역을 말하며 ‘불사’는 천신제를 지내는 성을 의미하는 땅으로 시암리를 중심으로 하성, 월곶, 통진 일대를 별읍(別邑)으로 가진 연맹국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포지역이 한 눈에 보이는 지금의 수안산이 있는 대곶의 수안현이 김포지역 전체를 거느린 국읍(國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곶 출신의 김병욱 인천대 명예교수 등 고대사 연구자들에 의하면 속로불사국이 존재했던 그 시대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가 교차하던 시기로서 북방의 철기문화가 남하하면서 남방의 청동기 문화를 병합하던 시기로서 수안산 일대는 물론 시암리 등 김포반도 일원에서는 수많은 토기와 석기, 그리고 지석묘 등이 발견되고 지명에서도 천신제를 지내던 성스런 땅이란 곳이 여러 곳에서 밝혀지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서기 475년)때에 처음 등장한 김포의 고대시대 지명인 검포(黔浦) 역시 존장 또는 부족장이 다스리는 바닷가 고을의 의미로서 단군왕검의 신성한 검(黔)자와 같은 의미인 신성한 포구가 있는 땅이라고 한 것에서도 같은 맥락이다.

기원전 18년에 부여ㆍ예맥족인 고주몽의 아들 온조가 북방의 철기문화세력을 이끌고 한강일대로 남하해서 하남 위례성 (올림픽공원이 있는 몽촌토성 일대를 만함)에 세운 백제 역시 마한의 54개 소국 중의 하나였는데 백제는 서기 3세기 후반까지 200여년에 걸쳐 비류가 인천에 세운 미츄홀 등 마한의 소국들을 단계적으로 모두 통합하였으며 한강하구 김포반도에 있던 속로불사국도 서기 1세기 경 백제에 흡수되어 오랫동안 선사시대로부터 기원 전후 무렵까지 상당한 세력을 구축했던 김포반도의 고대역사가 백제문화권에 흡수되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왔다고 할 수 있다.

김포반도의 역사문화 찾기는 고대시대까지 확장해야

오늘날 세계화에 대응하는 지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전국 곳곳에서 자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정체성 확보를 위한 역사문화 복원과 스토링텔링화, 지역의 자부심과 미래발전 비전 설정을 위한 역사문화 찾기와 문화융성을 위한 기획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검단 선사박물관의 “인천, 마한과 만나다”, “하남의 위례문화축제”, “나주의 마한문화 축제”, “김해의 가야문화축제”, 한양도성 박물관, 궁예도성 남북공동발굴 작업 등 역사문화 뿌리찾기와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문화창조 활동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 김포반도는 농경지역에서 급속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도ㆍ농 복합 도시로 변모되어 구도심과 신도시 간에, 농촌과 도시 간에 사회경제적 격차는 물론 문화적⦁정신적 소통 부재와 공동체의식의 부재 등 많은 사회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포에서 선대부터 살아왔든, 밖으로부터 이주해왔든, 오늘날 김포사람들이 김포반도에 애정을 가지고 살아갈 역사적, 문화적, 정신적 통합의 기제도 약하고 공동체 통합의 역사문화적 의식도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김포시에서도 김포독립운동기념관을 중심으로 한 일제하 항일운동의 역사문화 바로 세우기 작업, 충절과 독립을 위한 중봉 조헌선생 기념사업 활동, 평화문화 조성을 위한 김포조각공원과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평화누리길 조성 등 평화번영을 위한 노력 등이 이어져 왔으나 이를 역사문화사적 접근으로 확장하여 김포반도의 고대시대와 선사시대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삼한시대의 대표국가였던 마한의 54개 부족국가 중의 하나였던 “속로불사국”에 대한 지역적 관심과 스토리텔링화도 그런 맥락중의 하나이다.

앞으로 김포반도가 분단과 한반도 평화번영 시대의 허브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김포반도의 유구한 역사문화 정체성과 지역문화 개발을 통한 자부심 배양 그리고 김포지역의 미래발전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비전과 컨텐츠 개발이 매우 중요해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편집국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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