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에 의해서 내가 규정될 뿐 아니라 그 남에 따라 내 태도가 달라지기까지 하는 페르조나가 있다. 마치 물의 모양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그릇에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서 그 형태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남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는 점이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람인(人)+사이간(間)’. 인간(人間)이라는 한자표현이 이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관계에 의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규정당하는 것이다. 나인 내가 남자 혹은 여자로서, 아버지의 모습, 남자의 모습, 아저씨의 모습으로서 등장한다. 다른면으로는 직장에서의 위치, 단체의 회원, 직책 등으로 다양한 페르조나(가면)의 모습을 취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남이 날 어떻게 보건 별로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매 순간마다 주변의 기대(규정된)에 걸맞는 모습으로 지낸다는 것은 정말 숨막히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거나,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 적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위들이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가면이 필요 없는 곳에서야 비로소 자기 본모습을 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내 속의 나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부끄럽거나 두려워서 일부러 외면하기 때문이다. 체면과 노력해온 권위 때문에 모른채 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너나없이 가면 속의 본모습을 잊고 지내거나, 혹은 그런게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속의 나는 이를 외면한다고 아무런 변화의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잠 못 이루는 모습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혹은 우울증으로, 때로는 도대체 내가 뭘하고있는가? 하는 삶의 회의로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남에게 잘보이려고 ‘~다워야’ 하는 동안에 내 피부와 속살은 거칠어지고 파리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주어진 페르조나를 위해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내 속의 나는 방치된 채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해가 바뀌었다. 그 동안 페르조나에 의해 내 속의 나는 방치된 채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본래의 내 모습을 찾아 나서는 한해로 출발하자.

페르조나가 규정한 삶이 아니라 내 속의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을 선택하는 삶을 살자. 내 속의 나를 끄집어내어 공개하고, 모든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혹은 지금당장은 좀 이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아닌 것은 아니고, 그런 것은 그렇다고 표현하자.

페르조나에 의해 설명되어진 사실이 아니라 내면의 자기를 드러낼 때 우리의 관계는 진정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로를 승화시켜 갈 것이다.

김진수 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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