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블랙박스가 뭔데요?”
“비행기의 항공행로를 기록해 놓은 주황색빛깔 형광물질을 입혀 놓은 상자죠. 비행기가 비행하는 순간부터 4채널로 된 마이크로 기내 상태를 자동으로 녹음을 하죠.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은 비행기가 사고가 나 추락할 때 가장 충격이 약한 비행기 꼬리 밑 부분에 설치되어 있는 블랙박스를 찾습니다. 블랙박스가 충격으로 인해 고정된 자리에서 이탈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블랙박스에서 37.5kHz의 주파수가 약 30일 동안 발생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죠. 주파수 탐지기를 가지고 37.5kHz가 발생하는 위치를 탐색해가면 블랙박스를 찾아낼 수 있는 겁니다. 즉,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블랙박스에 녹음되어 있는 기내상태를 조사하여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죠. 비행기가 사고가 나도 불충하게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 과학적인 접근을 하기 때문에 사고 원인을 진단하여 비행기의 결함을 수정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천만 국민 또는 수억 국민의 삶에 대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호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데도 침묵하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갑자기 무슨 말인가요? 무엇 때문에 국민이 갑자기 불행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네. 국민이 불행해지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때문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대도 침묵하거나 오히려 더욱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내놓고 있습니다. 마치 국민연금을 당연히 세금처럼 강제적으로 거둬들이려고 하고 있죠.”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산책을 하던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에 참여를 하였다.
“국민연금이 준조세처럼 사용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국민연금제도를 비롯한 모든 사회보장제도의 운영이 정치적 속임수(political manipulation)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즉,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고 이해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국민연금을 국민의 노후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실시했지만 그 이면에 국민연금이 실질적으로는 세금처럼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쁩니까?”
한 무리 사람들이 가을날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맞은편 산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럼. 당신의 재산을 공익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방만하게 사용하여 재산상 손실이 발생해도 괜찮겠습니까? 당신의 재산에 대하여 안정성과 수익성을 고려하여 운영하지 않고 불안정하고 수익성도 기대할 수 없는 공공자금으로 운영되어도 되겠습니까?”
“음.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국민연금이 세금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의 돈을 잠시 정부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는 말씀이죠?”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을 타인이 관리하여 운영해준다는 것도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 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금융기관보다 더 책임소재를 물을 수 없는 정부에게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달라고 맡겨 놓을 수 있겠습니까?”
“음.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기만할 수가 있나요?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 건가요?”
앞서 나가던 사람이 뒤를 돌아 두 손을 치켜들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답답한 사람아. 국민연금을 세금처럼 사용하는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세금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자네도 잘 모르나? 세금을 아무리 방만하게 운영하여 손실이 발생하여도 누가 책임을 지나? 물론 책임소지를 따지는 사람마저도 없겠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할당하는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만한 사람 다 알지 않나? 무조건 다 사용해야 다음 해에도 그만큼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데에다 아주 돈을 뿌려대는 걸 자주 목격하지 않았나? 무조건 할당 받은 세금은 다 소비해야 하는 거야. 정부의 몇몇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이 어디어디에 필요할지 알 수 있겠나? 막대한 돈을 적재적소에 절대로 그들은 배분할 수가 없는 걸세.”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런데 무슨 근거로 국민연금이 준조세처럼 공공자금조달을 위해 정부가 사용한다고 하나요? ”
그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침묵을 지키자, 대중 앞에 거의 나서지 않던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간만에 말을 하려고 해서 그런지 말이 잘 새어 나오지 않아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도 국민연금 제도를 시행하고 나서 예산 적자가 누적되자, 예산으로 잡혀 있지 않은 국민연금기금을 십여 년 이상 정부의 적자예산을 보충하는 데 사용을 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도 1988년 국민연금이 시작된 이래로 연금기금을 정부의 필요에 의해 공공부문에 사용하다가 아예 제도적으로 국민연금기금을 공공부문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1993년 12월 7일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1994년 이 법이 시행됨으로 인해 집중적으로 공공부분에 국민연금기금이 투여되었죠. 즉, 국민연금기금이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되어 세금처럼 사용될 수 있었죠. “공공자금관리기금법” 제 5 조를 보면 “기금 등의 관리자는 그 기금 등의 설치에 관한 법률에도 불구하고 그 여유자금을 관리기금에 예탁하여야 한다” 라는 강제예탁조항이 있습니다. 즉, 국민연금기금을 정부가 공공자금처럼 멋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사람들은 산을 벗어나 대학교 교정 안에 있는 호수로 들어서게 되었다. 호수 둘레 1바퀴가 족히 7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오리들도 보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조류들이 보였다. 오리들이 퍼득거리자, 물결소리가 상쾌하게 들렸다. 또 다른 새는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여 고기를 잡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조류 떼들을 보자 사람들은 부럽다는 듯이 한동안 쳐다보았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고 신장시켜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체제가 아닌가요? 기본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행복추구권, 인간의 존엄,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강화시키기 위해서 합의된 체제인데, 이상하게 점점 더 자유의 영역을 침범해가는 통제 수단이 확산되어 가는군요. 국민연금이라는 것이 국민의 노후 보장을 정부가 챙겨주는 대신 국민은 국민연금에 의해 통제를 받게 되는군요. 국민의 노후의 안정된 삶도 책임질 수 없을 뿐더러 국민의 자유의 영역을 침해해서 국민의 정신적인 평안을 흔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국민의 노후의 안정된 삶을 국민연금이 책임질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1988년에 국민연금을 시행할 때는 국민연금보험료를 꾸준히 내면 60세 이상이 되면 평균소득의 70%를 연금으로 지불하겠다고 하더니, 1998년에 와서는 연금지급개시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점차적으로 조정하겠다고 하면서 연금급여수준도 평생평균소득의 70%에서 60%로 줄이겠다고 하는군요. 과연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국민연금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65세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연금지급개시연령이 70세로 되고 연금급여수준도 50%로 줄어들 것 같군요. 국민연금에 대한 결과가 이렇다면 분명히 국민연금에 대한 블랙박스(원인분석을 위한 수단)를 조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찬성의 표시를 하였다.
“담배를 피면 해롭다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담배제조회사가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렸던 경우가 있었죠. 그리고 막대한 손해배상을 물었던 판례가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국민에게 좋다고 선전만 하는 정부에게 훗날 국민이 국민연금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손해를 입으면 손해배상을 신청할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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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임용..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현재 비와삼출판사 대표. 저서::(주식투자의삼파전)주식삼국지
박상준 parksang@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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