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이해찬 국무총리의 국회발언으로 한나라당이 대정부 질문을 보이콧하고 이총리도 사과를 거부함으로써 파행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같은 날 열린우리당의 김부겸의원이 나서 대통령과 총리가 이념논쟁에서 빠져 줄 것을 주문했으나 정부와 한나라당의 극한대치 전선속에 묻히고 말았다. 이로써 정치권의 싸움을 바라보는 국민은 또다시 정치권걱정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살기 어렵다는 이 판국에 또 한번의 짜증으로 우리의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회에 생명력을 가져다주는 기(氣)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꼬인 부분을 풀고 나가야 한다. 건강한 기운이 온 사회를 헤짚고 돌아다니도록 막힌 부분을 뚫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살고 사람이 산다.
그런데 누가 막힌 것을 뚫을 것인가. 얼핏 보면 대통령과 집권당이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라는 최소임무에서 나아가 번영과 발전이란 최대임무가 집권측에 있기 때문이다. 보다 폭넓은 아량으로 한나라당과 군소정당을 품어내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세계시장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책무가 대통령과 제1당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측이 이 같은 국민여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충족은 커녕 틈만 나면 한나라당을 자극하고 야당을 못살게 군다. 먼저 시비를 걸고 먼저 분란의 씨앗을 제공한다. 신행정수도 건설만해도 노대통령의 지배세력교체발언과 김안제 전 신행정수도건설위원장의 ‘사실상의 천도’발언이 한나라당에게 공격빌미를 준 것도 앞선 사실이다. 김부겸의원 말마따나 대통령과 총리가 자중하는 것이 현상적으로 보면 올바른 자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대립과 투쟁의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데 문제해결의 난해함이 있다. 집권측의 현상적인 겸손과 타협과 양보가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결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집권측이 겨냥하는 한나라당과 조선.동아의 문제는 집권측의 양보와 겸손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며 조선.동아가 반역자적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적 상대방인 집권측이 한나라당과 조선.동아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정치공세를 할수 있도록 여건을 형성하는 자칭 보수진영에 있다.
한나라당이 경제발전에의 일정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유신이래 군사정권의 후예라는 사실에 대한 완벽한 석고대죄, 조선.동아가 민족개량주의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다소간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결국 친일과 독재부역언론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전면적인 참회, 바로 이런 반성과 참회없이 새로운 역사, 새로운 흐름에서마저 역사와 사회의 주역인양 하는 시대착오적 발상, 그래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을 20세기 냉전대결주의에 의존해 연명해가려는 구태의연한 발상, 이러한 것들이 집권측의 무자비한 대야(정당과 언론까지 포함)투쟁을 낳는 근본 원인인 것이다.
집권측 입장에서 정통성이 불분명한 정당과 언론을 신뢰할 수는 없다. 신뢰하지 않은 상태에서 흘리는 웃음은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공법으로 끊임없이 그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조.동은 약점을 개선하려는 진지한 자세보다 집권측이 약자를 품지 않는다는 현상적 문제만을 집중 공격하는 , 대증적인 공세로 소일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한나라당과 조선.동아라는 거대언론사가 아무 문제없다는 가정 하에 집권측의 국정운영자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집권측이 한나라당과 조선.동아에 일체가 되었을 때 역사와 사회의 진전을 요구하는 국민의 시대정신은 어디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4대개혁입법안을 들어 생각해보자. 국가보안법존치로 한쪽 손은 화해의 악수를 청하면서 다른 한쪽 손에는 상대가 들고 있지도 않은 도끼를 들고 서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다 문명화된 자세일까. 남북전쟁이라도 한판 더 벌여보자는 투기적 냉전주의자들에게 이 나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송두리째 맡겨놓자는 것인가. 남북대치국면속에서 탈냉전시대 자국이익중심주의로 활동하는 주변강대국에게 우리의 알토란같은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넘겨주어도 좋단 말인가.
또 매년 국민혈세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를 설립자의 설립자본투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전근대적인 사학왕조가 가능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일까. 수천만원에서 억단위까지 기여금을 내고서야 ‘학교선생질’ 할 수 있는 비교육적 사학을 그대로 존치시켜야 하는 것일까.
조.동의 주장대로 언론사지분 소유상한제와 시장점유율제한이 위헌적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지금의 언론이 정상적인 언론상황, 언론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 독재시대 특혜와 특권으로 형성된 부를 가지고 공정경쟁원리에 반하는 시장질서교란행위로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일부 거대신문들이 21세기 국민의 건전한 여론형성을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과거사마저 친일과 독재부역은 말하지 않고 박종철고문치사 사건등을 가장먼저 보도함으로써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는 염치없음은 오히려 언론개혁을 해야할 당위성만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또 과거사 청산없이 새로운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 과거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밝히자는 주장정도가 법제화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의가 자리 잡을 공간은 어디일까. 지금 우리가 한나라당과 조.동을 통해 보고 있는 바와 같이 부당하게 획득된 과거의 기득권을 연장하고 유지하려 함으로써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끝없는 좌파논쟁이나 불러일으켜 국론을 분열시키고 급기야 경제가 망해도 좋다는 식의 저주스런 경제보도태도, 이런 것들이 모두 과거사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반성해야할 세력들이 진솔하게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아닐까.
경제는 안되어 먹고 살기 힘든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끊임없이 한나라당과 조.동을 못살게 하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인가. 아니면 21세기에 20세기적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끊임없이 뒤로 되돌리려는 반동적인 자칭 보수의 흐름인가.
현상적으로만 보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분열과 대립으로 상생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한나라당과 조.동의 반성없음에 있다. 그들이 과거에 지은 반사회적이고 반역사적 행태에 대해 잘못했노라고 진솔하게 사과하고, 그 사과를 믿을 만한 후속행동과 태도들이 온 국민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면 우리사회는 이익과 가치의 차이에서 오는 간격을 절충하고 타협하고 대화하여 해결하는, 정상적이고 선진적인 문제해결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까.
'이놈 저놈 다 그르다'는 양비론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도,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맺힌 역사의 한이 풀려야 상생의 사회와 경쟁력있는 경제가 가능해질 수 있다. 그래서 막히게 한자와 맺히게 한 자들이 먼저 사과와 반성, 그리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남아공의 사례와 같이 진실과 화해위원회활동을 통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그래서 다시는 이전의 퇴행적 행태를 모두가 중단하고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시대기풍을 만드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소란함도 맺힌 한을 풀기 위한 살풀이로 볼수 있다면 그나마 생산적이지 않을까 한다. 한나라당과 조.동의 진솔한 반성과
새로운 태도만이 우리 역사를 새롭게 쓸수 있는 출발점일 수밖에 없음을 부연하면서.
김석수 pwk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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