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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운동회
유인봉
(사)김포여성의 전화 공동대표

아들이 운동회에 올 거냐고 말했다.시간을 내서 가겠다고 했다. 사무실 일이 마음에 더 걸려 있어서 쉽게 시간이 나지 않았다.

결국 김밥 사고 과일을 사 가지고 점심시간을 대서 가려니 일하는 엄마들은 다 나처럼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의 운동회는 그야말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온 동네의 축제이며 놀이마당이었다. 맨발로 달리기 선에 섰을 때의 가슴 두근거림, 내 위 바로 언니는 달리기를 잘 못해서 늘 걱정이었지만 나는 선머슴아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뜀박질은 자신 있었다.

얌전하고 어른들한테 집안 일 잘한다고 칭찬 받던 언니보다 잘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운동회는 참 신나는 일이었다.

연신 타 온 노트를 언니에게 나누어주면서 어깨가 올라가던 일이 기억난다.
또 어머니가 모처럼 꺼내 입은 한복차림에 삶은 계란을 가지고 본부석에서 방송을 하고 있던 나와 선생님에게 내미셨을 때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그렇게 운동장은 내게 무척 커다랗고 달려볼 만한 세계였다.

그런데 아들이 5학년 댄스를 하는 모습을 꼭 보고 가란다.

시간은 바쁘고 시작하는 모습만 보고 가려니 하는데 멋진 모자를 만들어 쓴 아이들이 줄지어 나오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온 우리아들은 모자가 영 달랐다.

검은색 신사모를 만들어 쓰고 나온 아이들과 달리 집안에 있던 등산모를 버젓이 쓰고 나온 모습이 덩치도 큰 탓에 아저씨 같았다.

이왕이면 아이들 속에 가려져서 튀지 않은 아이를 기대했는데 아이의 모자가 마음에 걸렸다. 늘 챙기지 못하는 엄마로서 담임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하면서 얼굴이 부끄러웠다.

“너는 왜 모자를 안 만들었니?”
“엄마 걱정 마세요. 우리선생님이 독특해서 좋대요”라며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이다.

더구나 여자들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여자아이들의 줄에 서서 엄마 좀 보라는 듯 큰 덩치를 가지고 춤을 춘다. 순간 아이를 배려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선생님이 고마웠다.

만약 선생님이 “왜 아이들과 똑같은 것으로 준비하지 않았냐”고 야단했다면 아마 우리 아이의 마음은 그렇게 즐거운 운동회는 못 되었으리라.

왜냐하면 아이들의 감정의 크기란 어른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세파에 시달리며 온갖 풍상으로 감정이 무디어져 있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두고두고 흉터를 남기고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어린 시절 듣게 된 사소한 말 한마디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기도 한다.

“왜 다른 아이들과 똑같지 않느냐”는 소리보다“독특하고 유일한 복장”이라는 말 한마디가 신나고도 상처 없는 운동회를 만들어 주었다.
<제120호 4면/2001.9.17일자>

편집국  mirae@gimp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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