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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봉 대표이사 | ||
새벽 찬 바람과 함께 눈 내린 산하를 하얀 조각달이 비추고 있었다.
코 끝을 싸하게 파고 드는 겨울, 편하게 사는 집이 결코 아닌 가옥구조, 히말라야 로찌 같은 집에서 살다보니 가장 곤혹스러운 일중의 하나가 바로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다.
눈 내리는 날의 낭만은 낭만대로, 긴 빗자루와 너까래가 필수이다. 이리 저리 눈을 치우다 보면 추웠던 일은 어디로 가고 온몸이 땀 투성이다.
찬 기운과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 들지만 차가 집 앞 마당에 까지 올라오려면 숲으로 난 길을 빙판이 되기 전에 깨끗이 쓸어 놓아야 한다. 처음에는 눈을 치우고 쓸어야 한다며 시작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헝클어진 마음을 쓸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
웬지 무거웠고 개운치 않았던 것들이 다 정리되고 치워지는 것 같은 상쾌함만큼 차가운데 노출되었던 볼이 붉어져 있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쏟아져버린 눈 덕분에 한 번 치웠던 눈길을 그대로 밟아 다시 치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도로 하얗게 내린 눈을 너까래로 치워대며 드는 생각이다.
밥하는 일도 그렇고 일상의 대부분은 그렇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사는 모습이 많다는 것, 그렇게 정말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묵묵하게 다시 손에 익숙한 듯이 다잡고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소소한 일상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과 같은 가장 단순하지만 반복하는 일을 마다않고 수행하는 일이 일상이다.
아무리 다 해 놓은 일인 것 같아도 다시 또 반복해서 하는 일이 많다.
대부분 큰 길은 훤하게 뚫려 있어 방금 전까지 눈 속에 파묻히다 시피 눈을 치우다 나온 내 모습과 전혀 다른 질이 다른 도시의 풍경이었다.
깔끔함과 정갈함, 그리고 편리함이 대세인 세상에 가끔 우리가 사는 방식이 아주 근대적이고 뒤떨어진 모습 같다고 느낀 적도 많다.
세상과 도시는 저만큼 있고 나만 혼자 오식처럼 촌스럽게 서 있는 것 같은 외톨이 된 느낌도 가끔 있다.
하지만 무거운 암을 경험한 특수한 시간을 스스로 다스리며 15년을 하루같이 수공업적인 삶 속에 살아보면서 너무 빠르고 직선적인 틀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시달리며 고생하며 살았을 생각과 세포들의 아픔을 달래고 다시 하나 하나 수공업적으로 살아가는 정직한 일상의 불편함도 사랑한다.
떠들썩한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고요한 시간과 만나야 하듯이, 그렇게 숨바꼭질 하듯이 숲 가까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신이 걷는 길을 스스로 직접 치워가며 살아보는 일도 15년 전에는 많이 안 해 본 일이다.
당연히 남이 치워 준 길을 걸었던 날들이었고 고마움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남이 치워놓은 눈길을 가는 것도 편리하고 좋지만 직접 빗자루를 들어보면 세상의 무엇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렇게 남의 심정도 내 심정도 더 잘 헤아리게 되고, 이심전심의 아름다운 공감과 공유로 이어지는 삶의 경험들이 익어 갈수록 너와 나의 고단한 삶도 아름답게 담아내게 되지는 않을까!
눈길을 쓸며 가늘어지는 조각배와 같은 양력 1월, 음력으로는 섣달의 달을 보내고 있다. 늘 우리의 정서속의 설날의 설레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이른다.
구정을 며칠 앞두고 그렇게 설빔으로 가슴이 설레고 들떴던 어린 날들이 눈앞에 다시 그려진다.
차가운 겨울 문풍지의 부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한 켤레씩 부모님이 설빔으로 준비해 주셨던 양말을 신어보며 새 양말 한 켤레에 흡족했던 작은 기쁨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아주 조금씩 베어서 입에 넣고 음미하는 아름다운 맛을 잊고 사는 지도 모른다.
늘 큰 목표, 큰 것들에 가려서 손과 발로 만나는 세상보다 합리적인 머리로 사는 세상에 익숙하고 지나치지 않아야 할 아픔과 슬픔, 기쁨과 스쳐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할 때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도 있다. 무엇이든지 조금 있다고 생각하면 귀하고 아끼게 된다.
우리의 옆에 있는 이들과 자연의 변화도 유리창 밖 풍경처럼 무감하게 흘려보내고 있다면 온전한 하루를 못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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