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혁신의 비밀
고통과 축복은 한 자루 속에 들어 있다한익수 RBPS경영연구소 소장
   
▲ 한익수 RBPS경영연구소 소장

“여보세요, 어, 당신 이 시간에 왠 일이야?”분명 전화 올 시간이 아닌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 했다. 한국은 지금 분명 새벽시간이다.“여보, 나 지금 키예프야” “뭐, 키예프라니, 농담하지마”

1997년 대우자동차 시절,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에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면서 그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도 곳곳에 공산주의 내음이 배어 있고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때였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모두 단신 부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 통화조차 자유롭지 못한 시기였다. 어느 날 아내가 우크라이나에서 얼마나 있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 막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 했으니 몇 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당시 큰 아이가 고3이었고 둘째가 고1이었다.

그곳에는 외국인 학교도 없고, 통용되는 언어가 러시아어다. 더구나 내가 근무하고 있는 자포로지라는 도시에는 변변한 대학도 없다. 그래서 아내와 이 문제로 몇 차례 의견 충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키예프에서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나와 상의해서 될 일이 아니니까,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것이다.

키예프 ㈜대우 지사와 연락해서 이삿짐을 먼저 보내고, 그날 아이들과 함께 키에프에 도착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이때부터 고생은 시작 되었다. 영어권도 아니니 의사소통도 안되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조차 어려운 열악한 환경이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학교를 보낼 방법조차 없다. 그렇다고 내가 가장으로서 도와줄 방법도 없다.

키예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로 중부 지역에 위치하고, 내가 근무하는 자포로지는 키예프에서 기차로 15시간 정도 가야 되는 남쪽 크림반도 가까이에 위치한다. 주말마다 가는 것 조차 어렵다.

지금이야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는 온 가족의 마음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초 인간적인 힘이 생기는 모양이다.

아내는 매일 저녁 두 자녀의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고 아이들도 피나는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 어학에 소질이 있는 큰 아들은 일년 동안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습득한 다음 키예프 국립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지금은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던 딸 아이는 키예프 차이코프스키 음대를 나와 지금은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때 함께 고생해서 그런지 지금도 엄마와 아이들의 관계는 각별하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회사 사정에 따라 근무지가 수시로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산가족, 주말부부라는 말이 생겨 났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나는 출퇴근 시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회사에서 30분 이내의 근 거리에서 살기를 원했다.

아내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3개월 이상 서로 떨어져 살게 될 경우 이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사를 많이 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우선 순위가 가정 중심이 된 것과, 출퇴근 시간을 절약한 덕분에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꾸준히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도 있었다.

우리의 삶이란 틀로 정해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마다 우선 순위만 다를 뿐이다. 고통과 축복은 한 자루 속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아내가 고등학생인 자녀들을 데리고 키예프로 간 것은 만용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때 사서 경험한 고생은 앞으로 자녀들이 살아가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한익수 소장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익수 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양대장 2017-01-23 23:31:08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분명 고통과 축복은 한자루속에 있다라는말에 동감합니다. 노력없는 성취와 고통없는 성공은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험란한 삶, 피할수 없다면 즐겨서 후에 뒤돌아 볼수 있는 여유가 되었음 합니다.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