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

늘 겨울은 춥게 마련이지만 점점 더 봄같은 겨울로 이어지다가 혹독한 추위를 맛보았다.
화목보일러의 불씨를 계속 살리기 위해 일하다가도 화목문을 들여다보며 아기를 돌보듯이 불씨를 돌보았다.
왜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꽃’이라 이름 했을까?

불은 환상적인 빨간 꽃이다. 가끔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환상적이고 빨려들어갈 것 같은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름다움의 근원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픔을 정화시키고 태우는 것, 실존적인 불안과 고독을 태우고 고통을 태워버리는 것 같은 환상과 낭만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한바탕 타오르고 나면 둔탁하게 보이던 나무 결이 고요한 재가 되어 남는다.
“보임”이“보이지 않음”과 흔적으로만 남는 그 모습의 고요를 보면, 살아가면서 뭔지 우리를 엄습해오는 그 공포와 환상, 들끓음과 갈등이 다 타 버리고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것만 같다.

매사가 그렇게 욕심을 부릴 것도 아닌 것들이 생각이 난다.
문득 문득, 아궁이에 불을 때던 엄마 생각이 난다.

그 옛날의 우리들의 엄마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며 자신들의 고독과 삶의 우울함과 화, 고통을 다스리며 다시 따뜻한 가슴과 우주를 회복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의 불씨’재 밖에 없는 듯이 다 꺼져 있어도 솔가루를 살짝 올려놓고 입으로 호호 불어서 새 불꽃을 살리고 가마솥밥을 맛나게 해주시던 그 꺼끌꺼끌해진 손마디 덕분에 자식된 우리의 오늘이 있다.

엄마의 가슴에도 활활 타올랐을 그 빨간 불꽃들은 정제된 화롯불이 되어 ‘엄마의 불씨’로 화로에 담겨 안방으로 옮겨진 것은 아닐까?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혹 엄마가 한 사람으로서 무엇인가 되고 싶었던 그 눌려졌던 강렬한 열망과 기억들이 불꽃과 같이 타오르고 회상되고 이내 같이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화로의 따끈한 불에 삼발이를 놓고 겨울이면 들기름 한 숟갈 송송 썬 김치에 찬밥이 볶아지면 구수하기 이를 데 없는 일식 일찬의 진미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가난하지만 찬란한 추억과 한의 미학이 우리들의 어머니의 삶이고 ‘엄마의 불씨’와 그 치마폭에서 아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자라났다. 어머니의 불씨는 그렇게 몸으로 살려낸 온기이며 사랑이었으리라!

화목보일러를 경험해보니 금방 더웠다 금방 식는 열기가 아닌 것이 좋다.
적당하게 참나무 장작을 집어 넣어 놓으면 방이 짤짤 끓는 것은 아니지만 온 집안이 훈기가 도는 것이 다르다.

수십년이 지난 후 어느새 나도 엄마의 불씨를 생각하면서 조석으로 똑같이 불씨를 살려내고 피우는 엄마의 모습이다. 가족들이 추울세라 귀찮은 것은 생각 할 수도 없다. 새벽의 찬기운을 마다 않고 장작불을 이리저리 불꽃이 잘 타오르도록 쌓는다.

하기야 어릴 때는 윗목의 물이 꽝꽝 얼고 코끝이 싸한 추위에도 그렇게 살아왔는데 요즘은 겨울추위에 모두들 예민하다. 추울 때는 추워야 모기도 진드기도 죽는다고 한다.
어쨌든 몇 시간 마다 장작을 듬뿍 집어 넣고 문을 닫아 놓는 화목 보일러 작동은 그 옛날이 자꾸만 생각나게 한다.
밖에서도 집안 온도를 맞추는 것이 가능하고 밥을 해 놓을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 나 혼자만 원시적 삶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는 아닐까!
기름보일러를 가동할 때는 보이지 않게 기름값 걱정이 따르지만 장작을 이용한 난방은 그보다는 손이 고생하는 것으로 냉기를 물리치고 사는 일이다.
일전에 만난 한 기업인은 이제 70세를 바라보면서 가장 스스로 최소한의 비용만을 가지고 사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살아갈 몇 년 후의 삶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인생의 마무리는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고 싶다고 했다. 자급자족하는 삶,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도 행복한 삶, 가까이에 물이 있을 것과 텃밭과 작은 하우스를 통해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그밖의 것들을 직접 길러서 먹을 예정이며 쌀 정도는 사 먹을 것이라고 했다.

돈도 열심히 벌어 보았고 최선의 노력도 해 온 삶의 자락에서 가진 그의 가치이다.
돈이 제갈량이 된 세상에서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품격을 잃어버리는 시대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평생 근면한 기업인으로 살아보았지만 소유한 물질이라는 것 이상의 자존감을 지키며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더 노력할 것이라는 그의 진지함을 나도 100% 긍정한다.

우리는 누구나 가난해도 손상당하지 않는 품격 있는 마지막 자족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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