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본사 대표이사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살고 그것을 확실하게 타인들 앞에서 밝히기도 한다.
그런데 30년 넘게 자식을 키우고 살고 때로는 몇 권의 책을 내고 살기도 했지만 삶과 인생을 딱 꼬집어서 이것이라고 정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비오는 날의 나무의 색이 더 검은 고등색을 띠는 것이 힘찬 에너지를 느끼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르게 생각한 것과 느낌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다람쥐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깨달음이나 발견의 시선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것도 참으로 모를 일이기도 하다.

삶은 무조건 예쁜 것도 아니고 웃음만 가득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어린아이가 혼 날 각오로 어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삶이 두렵고 낯설기도 하다.

일전에 15년 전에 다녀왔던 일산의 국립암센터에 되짚어 다시 가보는 기회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다.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시절과 그 일이 자신에게 있었던 것조차도 지워버리고 싶은 상처도 있다.

가끔“나는 짧고 굵게 살거라”고 죽음에 용감한 듯한 발언을 하는 이들을 만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작 몸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얼굴이 까맣게 되는 것도 보았다.

나중에 그 사람이 그렇게 용감한 이가 아니고 하늘 아래에서는 아무도 큰 소리를 그렇게 질러댈 수 없다는 것도 보았다.

주변에 가까운 이가 건강검진을 받은 후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어디를 가야할지 물었다. 나의 지독하게 아팠던 삶의 한 자락과 경험이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고 안내가 될 수 있다니!

이른 아침 그이와 한 차를 타고 갔다. 별로 말이 없었지만 15년 전 그날이 생각나기도 해서 착잡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이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으리라.

뭐라 할 수 없는 두려움과 착잡함으로 흘렸던 나의 눈물이 생각났다. 같은 아픔을 경험하는 이들의 이야기의 힘, 나의 오랜 과거가 어떤 이에게는 현재의 경험과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이란 좋은 것도 나누고 어려운 것도 나누고 다 주고 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직 일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평범한 인생이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이 세상에서 가난도 이기고 외로움도 이기고 쓸쓸함도 넘어서면서 때로는 아픔을 딛고 살아간다.

살아갈 수 있는 날이 허락되는 한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부르는 부름에 응답하면서 살아갈 필요도 있다.

세상을 더 느끼고 보고 들을 필요가 있다. 하나 하나 세심하고 즐겁게 감각한 것들이 절망의 시간을 건져주기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살던 이가 암센터를 가게 되면서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걷기를 시작했다고 해 잘했다고 했다. 그렇게 걷는 시간은 자신을 정화하는 시간이 되고 많은 생각이 흘러가고 다시 새로운 물길이 들어오는 길을 터 주게 될 것이라 믿는다.

좋아서만 걷는 것이 아니다. 힘들어서 걷고 이겨내며 살아갈려고 걷다가 보면 평정이 된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에 복귀하게 되기도 한다.

이른 아침 산길을 걷다가 한톨 한톨 밤을 줍는 시간이 새로운 감각을 주기도 할 것이다.
잘 익은 밤톨은 밤송이가 떨어질 때 멀리 튀어나간다. 밤톨은 이미 밤송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무는 그렇게 밤을 영글게 하고도 자신의 몸으로부터 떠나가도록 떨구어 내고 놓아준다.
문득 자식을 키우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에 생각이 가 닿는다.

그토록 영글라고 키우고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떨구어 놓아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밤 한톨 그것을 발견하고 줍고 일어나고 또 풀숲을 뒤적이는 것은 자신을 이리 저리 새롭게 만나는 생각의 숨결이다.

이 생각이 들어오면 저리로 가고 저 생각이 들어오면 이리로 물길이 터지듯 그렇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마치 멍하게 빗방울이 대지에 떨어져 내리는 것을 무심하게 만나듯이 그렇게 계산 없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너무나 많은 생각과 복잡함속에서 우리의 지친 영혼들이 숨 쉴 곳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 아픔이요, 병이다.
세상이 참 많이 아프다. 전쟁 날까 정말 두렵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마음의 힘과 희망의 걸음으로 절망의 늪을 거두어 내고 껑충하고 건너야 한다.
아직도 인생은 잘 모를 일이지만 도착한 곳에서 안 것 만큼은 몫으로 살아내야 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