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극한상황 속의 여유


▲ 유인봉 대표이사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일과를 예측하고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측불발의 사건들로 인해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긴급 상황들은 때로 폭군처럼 들이닥친다.
극한의 상황을 사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참는데 한계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각고의 노력과 더불어 상황이 도와주어야 하는 일이 많다.

오늘 아침만 해도 지인이 이사짐을 내리려는 데 하늘이 도와주지를 않아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치 하늘이 뚫린 것처럼 그렇게 쏟아지는 장대비 앞에 이사짐을 풀 수가 없는 상황이라 당황스럽지만 잠시 비가 피해지는 순간에 후다닥 이사짐을 내리고 젖은 옷과 함께 한 숨을 돌려야 했다.

너무 바쁘게 살면서 과연 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며칠 전에는 서울에서 우리 옷의 생활문화 정착을 위해 애써온 “질경이” 사장님이 오랜만에 김포를 방문했었다. 치열한 세월이 흘러 그는 다소 불편한 다리에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었다.

9월에 수술을 앞에 놓고 자신이 만들었던 옷을 사랑하고 입는 전국의 인사들을 찾아 만나 담소하고 이야기를 모으고자 한다했다. 그런 시간이 그에게는 참으로 일이 아니라 “쉼”과 긍정의 시간인 듯 보였다.

자신의 인생과 역사를 옷을 통해 말해온 그는 “옷은 입는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는 의미심장한 언어를 꽃잎처럼 말했다.

오랫동안 품새가 넓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우리의 옷을 만드는 이와 고마워서 평생 그가 기워 만든 옷을 입는 이로 만나니 뭔가 세월의 간극도 없었다.

바쁜 일들을 잠시 뒤로 하고 우리 옷이야기를 인생이야기와 더하기해서 나누었다. 옷에 담긴 우리의 인생의 한 단면들, 장릉 숲을 우산을 쓰고 거닐며 나눈 이야기들은 한 장면 한 장면 “쉼” 그대로였던 것 같다.

누구의 삶인들 녹록할 수 있으랴만 이미 그 인생의 소소함을 넘어선 스토리는 상대방을 치유하는 넉넉한 약이 되고도 남는다.

술을 먹지 않아도 기운을 돌게 하고 얼굴의 혈색을 맑히는 힘이야 말로 대단함 그자체이다.
유난히 고운 옷을 만드는 이라 늘 철학이 담긴 우리 옷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서야 우리가 7시간 가까이 대화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서로 좋아하는 일들에 관해 소통한 시간은 대화가 되었거나 음식을 대하거나 설레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마치 제가 살아온 과정을 다시 훑어보는 듯했다"고 느낌을 전했다.
아주 달콤한 휴식을 취한 것 같은 개온함이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다.

가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풀숲을 다녀갔는데 오래 남는다고.
쉼은 결코 인위적인 시간적인 개념의 실상이 아닌가보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빨리 마음이 늙지 않는가보다.
시간이 남아 돌아야 건강한 것 만도 아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진짜 쉼이 무엇일까를 말해보는데 다 각기 쉼의 의미가 남다를 수 있다.
한사람은 자신의 쉼은 곧 ‘마음의 평안’이라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평안이 오고 그것이 쉼이 되더라고 고백했다. 회사를 경영하다보니 직원이 편하면 자신도 기쁘기 때문에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통장이 아닌 현금으로 칭찬을 하고 나니 자신은 따로 쉼이 필요치 않았다고 했다.

한 사람은 젊을 때는 “쉼”에 대해 잘 몰랐고 오히려 명절 같은 때 며칠 쉬려면 힘이 들었다고 했다.
일하는 재미가 바로 “쉼”이었다는 그는 젊은 시절 군대에서 휴가를 내 보내 주어도 다시 부대에 돌아가서 휴가기간 동안을 놀았다고 했다.

남들은 저승처럼 생각하는 군인생활을 그처럼 놀랍게 즐길 수 있던 힘이 마침내 그를 맨주먹으로도 일어서게 했고 그는 회사를 두 개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극한속의 여유”를 누린 사람의 미소를 누가 알겠나!
남들이 다 하기 싫어하거나 갖고 싶은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얻는 쉼과 행복이 있다.

누구나 잘 살고 싶어한다. 또 멋있게 잘살고 있어 좋다고 그렇게 의미있는 타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도 쉼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잘 살았다”는 말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언어 아닐까!
정말 잘 산다는 것은 정말로 푹 상황에 빠져 진탕 신나게 산다는 것이 틀림 없다.

일의 재미가 있고 짧은 “쉼”으로 탄력을 받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을 살려내는 코끼리 같은 힘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