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숲을 넘어 황량한 돌산으로
3500m에 위치한 이탈리안 캠프에서 밤을 보냈다. 그전날부터 따라다녔던 코감기는 있는 옷들을 홀라당 전부 껴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잔 탓인지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곳 이탈리안 캠프에는 독일인 두명이 있었는데 한분은 여성으로 머리가 하얗게 색이 바란 아주머니 였고 한분은 체격 좋은 남성 이었다. 간혹 체격좋은 서양 등반가들은 홀로 이곳을 찾는 경우가 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전에 숨을 가다듬듯이 고소증을 적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고소증은 처음에는 버티기 매우 힘든 증상이지만 적응하면 할수록 괜찮아지는 묘한 증상이다.

오늘은 제펜니즈 캠프, 해발 4000m를 향해 나아간다. 더 이상 나무나 들판을 찾아보기 힘든 오직 돌덩어리들과 얼음계곡, 그리고 눈밭이 있는 험난한 길들만 남아 있었다.

악재 그후 고난
지난번의 악재로 인해 렌즈후드와 보조배터리가 부서져 버렸다. 지금 것 태양광 패널을 가방 뒤에 매달고 자가 발전을 해가며 보조 배터리를 충전하는 식으로 제법 넉넉하게 전자기기들을 사용했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이탈리안 캠프에서 다울라기리 협곡으로 가는 도중 가파른 길을 오르다. 하마터면 떨어질뻔 했다.
추락사고가 아니라 추락사로 바로이어지는 이곳에서 한발한발 오르는 발걸음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 살얼음 판을 올르게 되었다.

목적지인 제팬니즈 캠프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법한 빙벽이 출현 했다. 팀 리더인 뱀바 셰르파는 올해 지진으로인해 산길 지형이 바뀌어서 오르기 쉬운 길이 파묻혀 버렸기 때문에 이 빙벽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클라이밍 셰르파 뱀바와 치링이 선두에 서서 빙벽에 발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곡갱이로 깨가며 앞으로 향했고 나는 그길을 따라 한발한발 조심히 올라갔다.

빙벽에 흙이 덥혀 있는 계곡을 오르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과 황홀감이 공존했다. 정말 한발 잘못 디뎠다간 곧바로 천당행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보단 집에가야한다는 마음이 더 컷다.

▲ 겨우 몸만 지탱할 수 있는 공간에서 쉬고 있는 포터

정결한 마음으로 불안한 징후를 씻어내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빙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빙벽 위에는 또다시 끝없이 펼쳐진 돌산들이 가득했고 한참을 올라서야 제팬니즈 캠프에 입성 할 수 있었다.

도착후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 어지러웠다. 셰르파 뱀바와 조진수 작가가 고소증이 온거 아니냐며 물었다.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물티슈로 온몸을 닦으며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해발 4000m 이상 부터는 옷을 벗는 다거나 간단한 세수도 불가능하다. 정결한 마음으로 잠을 청해본다. 

▲ 빙벽에서 길을 만들고 있는 셰르파

김희대 기자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