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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가난을 이기고 희망의 탑을 세우다”해성워치텍 김용 회장(62)
   
▲ 해성워치텍 김용 회장(62)

김용 회장은 국내 굴지의 시계전문기업인 해성워치텍을 일구고 정상에 올려놓은 성공적 기업경영의 CEO이다.
2016년 벽두‘최고의 전성기’를 맞아 힘찬 걸음을 걸어가고 있다.

그의 인생시계가 성공이라는 지점을 확실하게 가리키고 있는 황금의 시간대이다.
1988년 해성정밀 창업 후 수십 년간 시계시장의 대표기업이 되고, 그의 다부진 승부는 환하게 빛나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대곳면에 위치한 해성워치텍의 성공적 경영과 더불어 2015년 3월 베트남 현지공장을 5천 평 규모의 땅위에 착공 10월 1,500평으로 신축 완공했다. 베트남에 새로운 기업을 세우며 24시간 체제의 최신식 생산기반시설을 갖추고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고 엄청난 탄력을 얻게 된 것이다.

없음에서 있음으로“세상의 맏형”
14살의 소년이 가난을 이기고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역사는 가족과 형제를 구원해 낸 시작이었다. 자신의 가난을 딛고 일어서서 가족과 6형제(김용, 김승희, 김대길, 김길중, 김정애, 김성복, 김남철(매제)와 큰 마음씨의 아내 박순희(57)씨의 5형제를 모두 단합하게 하고 해성워치텍의 이름으로 한 길을 가게 만들었다.

김용 회장의 인생의 스토리는 타의 모범이 되는 가족기업 성공 사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995년 핸드폰 시장을 보면서 96년 시계사업이 사양사업이라 할 때 I.T쪽에 접목해서 사업이 커졌지요. 밑바닥부터 달려와서 삶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법을 알아야 했어요. 가까이 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법, 유혹이 와도 절대 발을 딛지 않았습니다”

김용 회장은 세상을 맏형으로 살아온 기업인이다. 2015년, 해성워치텍이 위치한 대곶면에 1천 만원을 선뜻 기탁하는 것을 비롯해 나눔의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호남기업인협의회와 일원단비경제인회의 정철화 초대회장에 이어 2대 회장으로 지역사회와 한국보육원에 10여 년 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솔선수범해서 나눔을 거듭하고 있다. 김용 회장을 아는 이들은 그를 일러 일명 불도저라고 칭한다.

   
 

지금이 제일 행복“감사제”로 긍정을
“14살 소년으로 청계천에서 버스를 타려면 다 뜯어진 바지입고 기름옷이라고 안태워줬어요. 일찍 객지에 나와 몸부림치고 나 아니면 세상이 없다고 아까운 청춘을 바쳐 성공해야 겠다는 그것이 독립심과 자신감, 파고드는 힘을 만들어준 기초였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해요 튼튼한 육신 주시고 공부 안 가르쳐주신 덕에 기술 배워 성공했으니까요(웃음)”

“항시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아내도 15살에 서울에 왔어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아내에게 말합니다.‘당신 배웠으면 나하고 결혼했겠나’ 라고요. 아내에게 고맙지요. 아들 영민(37)에게서는 손주가 2명, 둘째 김래원(31)은 베트남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월 초하루에는 회사에서 감사제를 지냅니다. 마니산에 올라서도 매년 감사제를 지냅니다(웃음)”

“아내는 고기를 사도 일곱덩이를 사야 해요(웃음). 마음을 먹으면 속전 속결 불도저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했습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요즘 세상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좋은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업을 하면서 있는 그대로 거짓말을 안 하고 진실하게 내 마음속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골프는 즐기지 않는다는 김용회장은 자전거타기를 오랫동안 즐겨오기도 했고 사진이나 음악듣기에 심취하기도 했다.

‘고진감래’의 동반자 아내 박순희씨와 삼부자가 새해 일출을 찍으러 나가기도 했다. 김용 회장은 세상에 선보인 카메라기종에 달인일 만큼 다뤄보고 찍고 즐기고 있다.

“LP판을 너무 좋아해 다방 하나에 있는 것을 다 인수했습니다. 노래는 잘 못해요 듣는 것 소리를 찾아서 오디오에 몰입하다 보니 그리되었고 카메라는 30년 했지요. 아주 한 살림 있습니다”

   
 

기업도 인생도 취미도 김용 회장은 크게 해 버렸다. 고향 무안에서 1만 2천평의 땅을 팔아 김포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다시 고향의 1만 2천평의 땅을 다시 사기까지 일심으로 몰입해온 김용 회장은 다방면을 스스로 노력해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인맥의 귀재, 호남기업인협의회의 단결력으로
김용 회장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막에 있어도 아래부터 위까지 많이 베풀며 직접 관계를 형성하는 기업인이다.

관내에서 오랜 정을 나누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장릉공단협의회 최태식 전 회장과의 오랜 친분, 정철화 호기회 초대 회장과는 23-4년 교류를 갖고 변함없는 뜻을 공유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중이다.

2대 회장으로 호남기업인협의회를 이끌어 가면서 눈에 띄게 결속력과 연대가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향 무안에서 14살 때 상경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처리가 없었다는 김용 회장, 초안, 기획부터 완성까지 한 분야에서 살아남은 승부사이며 최고의 CEO와 리더가 되어 지역사회와 고향이 같은 형제 기업인들의 모임을 힘차게 이끌며 희망봉이 되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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