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흘 전 신문사를 방문한 분이 우리 사랑이의 배가 좀 이상하다 했다.

“ 아, 사랑이는 여자강아지구요, 그 옆에 있는 희망이는 남자예요”

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것은 집주인으로서 무척 무식한 답변이었다. 이틀 전까지 임신사실을 몰랐던 사랑이가 예쁜 아기강아지를 그것도 다섯 마리나 밤새 낳은 것이다. 하얀 강아지 두 마리 검은 강아지 두 마리 한 마리는 어미를 닮아서 갈색으로 그렇게 앙징스러울수가 없다. 올 여름 길게 집을 비웠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에, 날마다 밥을 주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도 집주인이 그것을 눈치도 못채고 몰랐다니!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새끼들과 함께 지낼 큰 집 하나를 들여다 놓았다.우리가 보기에 지금까지는 사랑이 옆에는 희망이가 늘 있었으나 그렇게 이웃으로만 지내는 줄 알았다.

 

희망이만 있던 시절에 희망이는 그렇게 시끄러울 정도로 자주 짖어댔다. 그런데 옆에 사랑이가 놀고 부터는 쥐죽은 듯이, 없는 듯이 그렇게 평화롭게 살았다. “역시 희망이옆에 품격이 있는 사랑이가 있는 덕분이야”라고 우리는 가끔 유리창 너머로 녀석들을 관찰하며 말했었다.

희망이는 아파트에서는 길러볼 수 없다며 우리집에 사다놓고 가끔씩 보러오는 수양 딸 은옥이 신랑 소연애비인 윤혁이 장날 데려온 강아지였다. 시끄럽던 희망이가 옆에 짝이 생기니 집주인인 우리도 덩달아 안심이 되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외롭게 혼자보다는 언제나 둘이 좋고 평화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 콧대 높은 사랑이는 언제나 희망이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렇게 별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결코 인연이 아닌가보다고 웃은 적도 많다. 그런데 둘 사이에 언제 그런 역사와 새 생명으로 이어진 걸까?

강아지를 다섯 마리나 낳아놓은 모견 사랑이는 눈이 더 깊어보였다. 웬지 모를 고통의 깊이를 넘어선 눈을 바라보며  슬픔도 느꼈다면 지나친 느낌이었을까? 아무튼 이곳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손을 들어 기뻐한다. “두ㅡ마리는 하얀 색이니 희망이가 아빠일 듯 하고 검은 강아지들의 아비는 누구지?”

그것도 다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열린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생명을 거느린 어미의 품격이 달라보이고 눈물이 찡하니 돌았다. 내 몸도 찢어질 듯 아픈 배를 쥐고 식은 땀과 생살을 찢어가는 고통을 흘리며 애기를 낳아보지 않았던가!

 

그뿐이랴! 우리 수양딸 은옥이는 시집을 보내고 첫아기를 낳은 그 고통속에서 내게 처음으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아이고, 어머니.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아이를 둘이나 낳았대요”

그렇게 그 아이와 생명의 탄생의 현장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가슴으로 낳은 자식과 에미가 되었었다. 그리고 소연이라는 새 생명이 우리들에게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의 탄생 앞에서는 마음이 엄숙해진다. 보살피고 싶고 한번 쳐다볼 것 두 번 더 만져보게 된다. 음식을 주섬주섬 꺼내서 아기강아지들에게 젖을 물리는 사랑이앞에 두어준다. 모든 미안함은 기본이다. 사랑이가 처음 사무실에 온 것은 지난 해 겨울이었다. 처음 눈을 쳐다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이름이 그 순간부터 사랑이였고 너무 추워서 사무실 안에서 키웠다. 사랑이의 눈을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보는 이마다 전생이 사람이었나보다고 했다. 

 

감정이 뭉클 느껴지는 강아지를 안에서 키우다 봄이 되어 밖에 기르게 되면서 내 마음이 들킬까봐 눈을 자주 쳐다보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웬지 사랑이가 원망스러워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해가 지나면서 이미 그 어린 사랑이가 엄마가 되었다. 모견 사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애기 낳은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 장하다 장해. 몰라줘서 외로웠겠다. 미안해” 사랑이네 가족이 생기면서 늘 그 음식을 축내던 검은 고양이도 어느사이 네 마리의 고양이를 낳았다. 새끼보다 더 고운 것이 있으랴! 갑자기 우리가족 네 명, 고양이네 가족 넷 사랑이네 가족 다섯 일곱 마리의 오리들이 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매해 맞이하는 가을에는 늘 스토리가 있다.

 

그중에 제일은 새 생명의 소식이야 말로 가장 생기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말 못하는 동물의 생명도 그렇게 어여쁜데 이가을에는 많은 이들이 새가족을 만들고 새생명도 많이 낳았으면 참 좋겠다. 살다보면 정말은 부부간만 둘이 좋아서 질기게 사는 것이 아니다. 낳아놓은 생명에 대한 사명으로 힘들어도 다시 화해하고 덕을 쌓고 인생의 법도를 배워가는 것이다. 새끼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 부모이다. 자식에게 위해적인 무엇이라도 결단코 허용하지 않으려는 전사들이 부모가 아니던가! 우리집 사랑이도 저를 만지면 가만히 있어도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새끼들 곁에 가려고 하면 얼른 막아서고 안절부절 못한다.

 

어미는 바로 새끼의 수호신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