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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기회로 튼실한 기업 이룩하다”이 종 철 신일포장 대표
   
▲ 이종철 대표

이종철 신일포장 대표(67)는 건강한 기업현장을 지휘하는 사장님이다. 1989년 초기에“보람수출포장”이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사업을 펼쳐 전념했으나 어렵게도 불이 나는 바람에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다시 오너의 꿈을 잠시 뒤로한채 중간리더로 타기업에서 8년 동안 재독립을 위한 기회와 노력을 다했고 이후 1999년 오늘의“신일포장”으로 재도약, 알차고 튼실한 기업을 이룩해냈다.

“저는 늘 사업가 체질이 못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사기당하고, 이용당하고 어음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잘 몰라 실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이종철 대표의 온유한 성품과 신뢰기업“신일포장”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큰 업체에 흡수되는 중소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길을 열어달라고 많이 기도했습니다. 소량다품종에 착안해서 틈새전략으로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고객의 필요한 날짜에 적은 수량일지라도 성실납품으로 신뢰를 얻어가면서 점차 안정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소량다품종으로 경쟁력확보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독실한 믿음의 사람, 이종철 대표의 신일포장은 쉬임 없이 계속 바쁘다.
“어려울때는 꼭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시더군요. 초기 기업경험은 저에게 산경험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한 번 더 두드려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길이 열리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효성동에 본사를 두고 7년전 대곶면 대명리에 공장을 둔 신일포장은 16년차 연매출 12억인 작은 중소기업이지만 소량다품종 생산업체로서 어려움을 이겨낸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주문생산업체로서 튼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닌 주문생산입니다. 어려워도 그때 다 채워주심을 경험했습니다”

“너, 용되었구나”보는 이마다 이구동성
이종철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결코 자신의 능력으로 하지 않았다고 겸손해 한다.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직원들과도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한 솥밥을 먹고 있다. 십년을 같이 근무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제 직원은 모두 그에게는 오래된 벗이다.

서로 배려하고 호흡이 잘 맞는 것은 참는것이 몸에 배어있는 이종철 대표의 품성과 무관하지 않다. 젊어서는 부모모시고 사는 것과 교회에 나가는 것을 결혼조건으로 삼았을 만큼 신실한 생각과 생활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기도한 후 실행하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겉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신은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교회생활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극복되었구요. 여러 사람 앞에서 서볼 기회가 교회에서는 많으니 영업도 그 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그의 기도는“너무 없어서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너무 많아서 죄를 짓지 않게도 해주시라”는 진실함으로 연결되어있다.

“친구들이 너 용되었다고 합니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느냐던 친구들은 더 어려워요. 저는 17년 다니던 삼익악기를 그만둘 용기가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감사합니다”

맨주먹으로 친구에게 1백만원을 빌려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 이제는 가산이 많이 늘어 여러 형제중에서도 단연 경제적인 능력이 탁월하게 돋보이게 되었다.

그를 아는 주위에서는 이종철 대표를 보면 용이 되었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대를 잇는 신앙의 맥을 이어가다
이종철 대표는 증조부가 선천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이 되고 문중에서 쫓겨나 원산을 근거지로 한의사를 했던 집안이었다고 한다.

“해방 때 서울 상도동으로 정착한 후 상도동에서 아들 6형제 중의 막내로 태어났고, 위로 세 형제는 경기고, 용산고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안타깝게도 어머니를 비롯해 당시 유행하던 결핵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의 외가는 당시에 유명한 집안으로 외삼촌이 미대사관의 문관으로, 이모들은 이화여대등 유수한 명문대를 다녔다고 한다.

25세 총각집사가 된 이종철 대표는 직장에서도 일하기 전에 기도로 시작하는 경건한 생활을 모범적이고 충실하게 해 나가면서 다양한 산 경험을 쌓았고 이는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이종철 대표에게는 큰 자산이 되었다.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이종철 대표는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얼마전 결혼한 아들 광수씨에게 2세 경영을 맡기고 시골에 가서 봉사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 꿈이 되었다.

“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장로를 하라고 강권함이 있었지만 다섯 번을 거절했습니다. 돕는 것은 잘할 수 있는 참모형이라고 저를 생각합니다” 겸손과 자제력이 그대로 선하게 드러나는 이종철 대표는 남은 5남매의 형제들과도 더 없이 좋은 관계로 산다.

“생일, 경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챙기며 삽니다. 바쁜 세상에 다 모인다는 것이 힘들다고들 하지만 저희들은 조카들까지 유대가 좋습니다 ”

누구나 자신을 내세우기는 쉬워도 안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성숙시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이종철 대표는 외유내강형의 완성도 높은 삶과 사업을 이룬 사업가이다. 아내 김미수(64), 유아교육을 전공한 큰 딸 은경(34)씨 그리고 2세경영의 아들 이광수 과장과 더불어 좋은 가정 좋은 직장을 위해 노력해온 세월만큼 좋은 노하우가 되어 멋지고 다복하게 일하고 있다.

67세,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 그 나이를 가장 멋지고 행복한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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