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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떻게 쓸까 생각을 하며 인생을 되돌아본다’
   
▲ 김미자 회장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고촌으로 시집온지 40여년이 됐다. 고촌에서 축산농을 시작하기 전에는 저푸른 초원 위에 소가 풀을 뜯고 있을 줄 알았으나 소똥치우면서 힘들었던 생각이 소록이 난다는 김미자(62) 회장은 올해 고촌읍 생활개선회를 이끌어가면서 여든아홉의 병환중의 노모를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는 효부다.

김회장의 삶은 늘 사회적 활동을 함께 했다. 40대 부터 부녀회장, 농협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모임 회장, 축산농협의 여성산악회 초대 회장을 맡아서 했는데 두가지를 동시에 해본적이 없다는 김회장은 하나에 집중해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진실된 마인드를 가지고 봉사를 하고 있다.

새벽부터 밤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40여년 전 한적했던 고촌에 살면서 밝게 생활 하고픈 마음이 들 때 쯤, 외지 친구들 만나는 것 보다 지역활동에서 얻는 보람이 크고 보람있는 역할이 봉사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1977년 고촌으로 맏며느리로 시집와 시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으며, 아이들 셋을 기르며 생활하다보면 어려웠던 일도 많이 경험했던 것이 내공이 되어 없는 시간도 만들어 봉사할 수 있는 나날 이였다고 회상한다.

김회장은 낮에 봉사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먼저 일어나 한참 일을 해놓고 아침을 준비하고, 밤에 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남들이 김회장을 보고 흉을 할 까봐 조심스럽게 일을 했다고 한다.
“천여평의 밭에 올해 농산물을 심었는데 이웃이 하는걸 보고 따라서 해요”

결혼전에는 일을 해보지 않았다는 김회장은 눈썰미가 있어서 남들 하는걸 보고 일을 많이 하는데 남들 만큼 할 때도 있지만 사회봉사를 하면서도 일을 잘 한다고 스스로 칭찬한다고.

지난해 가계부를 보면서 제철 때 해야할 일을 살펴보는 김회장은 지난 시간들과 이웃을 통해서 농사를 짓는 지혜가 생기는 것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한시름 놓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세자매농장’과 자녀들
김회장이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은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남편의 배려가 있기에 가능했다.
“축산을 하게된 동기는 서울우유에 다니던 사촌의 권유가 있었어요. 작게 시작한 농장은 지금은 100여두로 성장했고, 남편이 대곳면에서 세자매농장을 운영하면서 착유사업을 하고 있다.

남편(김이섭.69)은 고촌에 있던 축사를 2010년 구제역과 한강로 개통등의 이유로 인해 대곶으로 축사를 옮겼다.

부부가 축협조합원으로도 함께 활동하면서“주말에나 만나지만 남편은 집에오면 할 일이 기다리고 있어도 즐겁게 도와주는 모습에서 내가 아직도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밖에서 봉사하고 오면 내마음이 여려져서 순화가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생활개선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립지에 고구마를 심어야 되는데 이번 주말에도 남편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김회장은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자란 세자녀가 스스로 잘커준 것이 고맙다고 한다.

부모의 성실함과 어른을 모시고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세자녀를 두고있는 김회장은 자녀에 대한 신뢰와 애정도 남다르다.

맏딸(39) 혜정은 요즘말로 셋째아이를 둔 애국자이다. 공부를 좋아해서 핑계삼아 집안일은 뒷전 이였는데 아무것도 못하던 딸이 결혼해서 할 일들을 척척 해내는 것을 보면 김회장은 결혼전 자신을 보는 듯하고, 축산농장을 시작할 때 기계없이 작게 했을 때 일손을 많이 도와준 아들 역할을 한 둘째 혜영(37). 셋째 승연(34)은 축협에 다니면서 할머니를 닦이고 식사를 챙겨주고 있어서 요즘은 막내 딸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둘째아이가 서울로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외손주를 돌봐주던 딸아이의 시모께서 다리를 수술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손주를 돌보고 있어요. 이젠 나이가 드니 아이를 돌보는것이 체력적으로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어 참 힘든 일이 더라구요”

딸 아이에게 이르기를 시어른들에게 무조건 잘하라고 조언한다는 김회장은 자신의 삶이 자녀들의 본보기 임을 생활에서 스며들도록 하고 있다.

병환의 시부모님, 나를 되돌아보다.
바쁜 일상에도 김회장은 지금 89세의 노모를 집에서 모시고 있다. 시어머니(박연희.89)는 무릎수술을 해야 하지만 32kg의 체력으로 수술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누워계신다.

“정신은 맑으나 소리를 잘 못든는 편인데 큰소리로 이야기 해야 알아들으셔서 목소리가 저절로 커질 수밖에 없어요. 때로는 큰 목소리 때문에 오해를 하실 때도 있지만 제 성격이 금방 풀어지는 성격이라서 다행이지요”

시어머니 봉양하는 과정에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기면 이제는‘나이 먹으면 나도 저런 모습이겠지’가여워서 더 살피게 된다고 한다.

김회장의 시모를 모시는 노력도 남다르다. 6년전 요양사자격증을 취득해서 어머니를 제대로 보살피고 있는데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삶의 모습은 김회장이 어떤자리의 이름으로 있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지인들의 격려가 자자하다.

예전에 시모의 병환이 길어질 듯 할 때 사정이 생겨 요양원에 3개월 정도 모실 예정으로 있었다.
“대.소변을 가리는데 요양원에서 귀저기를 쓰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됐어요. 이러다 의식까지 내려 놓으실 것 같아 2개월 쯤 지나 모시고 나왔지요. 집에서 12일 훈련하니까 대.소변을 혼자서 하시더라고요”

지금도 누워계시는 생활을 하지만 정갈하게 시어머니를 모시려는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시아버지께서도 60대에 폐가 좋지 않아서 병환을 치루고 돌아가셨어요. 금방 돌아가실 것 이라고 했지만 4년을 더 사셨지요. 호흡이 거칠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촌보건소에서 약을 타다가 응급처치를 제가 했어요”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는 것 숨겼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노모의 마음을 살피는 것 까지도 배려하는 깊이가 있다.
가족 뿐 아니라 이웃을 돌아 볼 줄아는 넓은 품의 어머니로 봉사 할 수 있는 나이가 2, 3년 정도는 남아있는 것 같아 할 수 있을 때 좀더 하겠다는 삶의 열정을 쏟고 있다.

봉사로 무엇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과 나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고, 안과 밖에서 최선의 역량을 다하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롤 모델이 되어 효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 있는 김회장의 한걸음 걸음마다 하늘의 덕이 쌓이고 있다.
 

신유미 부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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