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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복은 없어도 사람 복은 있었어요”인터뷰 - 조 담 연 통진시장번영회 회장
   
▲ 조담연 통진시장번영회 회장

모든 리더는 대표이자, 결국은 일꾼이다
조담연 대표는 언제나 카우보이 모자를 즐겨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이색적이다.
열심히 멋지게 열정을 다해 사는 것이 그의 삶의 스타일이자 목표이다.

고정리 사람으로 풍양조씨문중에 많은 형제 속에서 태어나 고향을 지키며 살아왔다.
서암초18회, 통진중17, 고16회 김포대를 졸업하고 통진 신협이사와 통진애향장학회회장, 새마을 지도자, 김포시통이장단협의회장 등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많은 활동을 한 바 있다. 지금은 통진시장번영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원칙과 선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저는 권력의지에 욕심내는 것은 싫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도가 지나치면 꺾인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는 내 욕심 안 부리면 되는 겁니다. 악의는 없지만 싸움도 많이 했어요. 아닌 것을 그렇다라고 하는 것은 안 되니까요”

여러 직함을 가지고 지역의 일을 하면서 깨달은 리더십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먼저 일하는 사람은 나를 따르라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내 위치를 알고 더 이상은 나가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리더는 동네의 대표지만 결국은 일꾼인 겁니다. 내가 이 만큼 하니 너희도 십시일반하라고 합니다”

오늘 즐겁게 살면, 내일이 즐겁다
조담연 회장은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면 내일이 즐거운 법이라고 말한다.
체한 음식은 다시 먹기 쉽지 않으나 악연이 된 사람일지라도 다시 볼 생각을 하는 것이 사람의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부터 예비군 소대장을 시작으로 작고 큰 리더십을 발휘하며 동네일이라면 열정을 더했던 조담연 회장은 지금도 김포행정에 대한 소식은 꼼꼼하게 챙겨보며 소식에 둔하지 않으려 한다고.

“당시에 소대장이면 작은 봉급이지만 나왔거든요. 그것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모두 통장에 넣어 비품도 사고 나중에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까지 하게 했더니 그렇게들 단합이 잘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의리와 단합에 누구보다도 정이 많다. 읍내를 지나다가 행사가 있으면 따끈한 쌍화탕 큰 박스를 건네기도 하고, 지역 어르신들이 게이트 볼 경기 모습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간식거리를 슬그머니 기부하는 천사이기도 해 어디서나 환영일색이다.

시민과 공무원들과도 이왕이면 서로 돕는 관계여야 함을 강조한다.
“공무원은 말단 직원일지라도 그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지역과 동네의 다리역할을 할 수 있고 언제어디서라도 근무했던 지역을 도울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조담연 회장은 한 번 본 사람은 늘 다시 볼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 지나간 사람이 있어서 오늘이 있다는 삶의 철학을 꿰뚫은 까닭이다.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더라”
조담연 회장은 막 환갑을 지났다. 61세 환갑을 2월에 지났는데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스스로 환갑잔치를 열었다.

조담연 회장은 술도 담배도 즐기는 편이다. 예비군 소대장 시절 국가 시책에 따라 정관수술을 하고 결혼한 흔치 않은 경험의 소유자이다.

그는 아내와 처녀총각으로 환갑까지 무자식으로 산다며 매일 신혼이었다고 웃는다.
“정부 시책에 문제가 많아요. 나 같은 사람은 정부시책의 희생양입니다. 정부가 가르쳐놓고 책임을 집니까? 나쁜 것 주었으면 혜택도 주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술을 참 좋아합니다. 술 먹으면 절대 사무실에 안갑니다. 술 먹은 모습을 현장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술을 먹으면 최종적으로는 마음이 작아져요. 아침에 깨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했나 싶지요. 아침에는 어제 통화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망각은 어쩌면 신이 준 선물입니다”

“군대 가서 담배를 배웠어요. 그때는 선임한테 맞으면서 화랑담배 피우는 것을 배웠다구요. 그때는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나서 지금까지 몇 십 년을 피워왔는데 그때는 정책으로 그렇게 해놓고 이제는 면세담배카드혜택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담배 값 인상으로 하루 1만원이상을 써야하는 애연가로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을 위한 사정에 매우 우호적이다.

“오죽하면 담배를 피우나요. 속 답답한 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겁니다”

한강의 해무와 함께하는 문수산행 좋아해
새벽의 문수산 등반을 좋아해서 3월중이면 새벽 5시 산행을 예정하고 있단다. 그의 문수산 사랑은 크다. 문수산에서 바라보는 해무와 마니산 혈구산 봉우리가 운무에 쌓여있는 문수산에 오르면 신선이 따로 없는 경지를 경험했다.

“더 이상 큰 산을 다닐 필요가 없이 다양한 코스로 3-4시간을 소요하는 산행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98년부터 문수산에 갔어요. 새마을 지도자를 하면서 종합건설 부도가 나고 아내 권유로 산에 다니게 되었지요. 버스타고 김밥 두줄가지고 산에 가서 문수사 밑에서 약수로 샤워하고 물을 떠가지고 집에 왔어요”

인생의 여러고개를 넘어 다양한 인생의 굽이굽이를 다 돌아 여기까지 왔다.
“인생을 살 때는 경제적 차이가 있을 지 언정 돌아갈 때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거지 뭐있느냐”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수 십년 인생 경험과 진액이 묻어나온다.

주위에서 그를 보는 이들은 수 십년 즐겨 쓰는 카우보이 모자를 비롯해 해외에서 수집한 수많은 모자를 가지고 멋진 옷차림으로 젊고 멋지게 산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여름성경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지난해 2014년 다시 6월부터 캐톨릭 신자가 되어 주일이 기다려지는 신앙자로 거듭나는 중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손등이면 손등, 손바닥이면 손바닥으로 살았다고 확신하며 오늘을 즐겁게 살고 또 내일이 밝으면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김포사람이고 기업인이다.
“돈 복은 없어도 사람복은 있었어요”그가 한마디로 자신을 정의한 말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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