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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욕을 먹어도 얼굴을 붉히지 않겠다는 자세로"김준태 직소민원실장
   
▲ 김준태 민원실장

1983. 공채(일반) 김포군 내무과-지방행정서기보
1988. 승진(심사) 김포군 식산과-지방행정서기
1989. 부처내전보 김포군 기획실-지방행정서기
1990. 승진(심사) 김포군 재무과-지방행정주사보
1993. 부처내전보 김포군 기획실-지방행정주사보
1995. 승진(심사) 김포군 양촌면 산업개발계장-지방행정주사
1996. 부처내전보 김포군 민방위재난관리과 병무계장-지방행정주사
1998. 부처내전보 김포시 기획담당관 계장-지방행정주사
1998. 조직명칭변경 김포시 기획담당관 담당-지방행정주사
2001. 명예퇴직(일반) 김포시 기획담당관-지방행정주사
2010. 별정직임용 김포시 비서실-지방별정직6급상당
2010. 조직명칭변경 김포시 자치행정국 행정과-지방별정직6급상당
2012. 조직명칭변경 김포시 행정지원국 행정과-지방별정직6급상당
2013. 조직명칭변경 김포시 안전행정국 안전행정과-지방별정직6급상당

수상경력
1985. 모범공무원-김포군수
1986. 직장 정화 유공-경기도지사
1990. 90년 지방공무원 소양고사성적 우수-김포군수
1991. 91년 내무행정발전유공-내무부장관
1995. 94 시군종합평가유공-경기도지사
1996. 민원행정유공-김포군수
2000. 법제사무수행유공-경기도지사
2001. 퇴직자포상-행정자치부장관

                                                                                                                                                                                                                                              “대명리 차부집 아들”로 유명해
아버지(김달용,작고)가 ‘바다사나이’였던 탓에 김준태 직소민원실장의 어린 시절은 바다처럼 시원하고 넓은 시야와 풍성함속에 있었다. 수산업을 했던 김달용옹은 강화수협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대명리 차부집 아들”로 버스기사들이 다 아는 유명한 얼굴이라 버스가 가다가 서주면 그를 따르던 친구들이 뒤따라 줄줄이 공짜버스를 얻어 탔던 추억이 있다.

어머니인 양옥례(89세) 여사는 처녀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김포지역 초대 기독교 송마리교회를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소중한 경험을 이어 현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모태신앙자로서 개화사상을 힘입은 형제들은 모두 개척정신이 뛰어났다.

큰 형인 김준해씨는 고려대학교의 럭비주장을 할 만큼 활발했고, 김준태 실장은 아쌀하고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되는 바다사나이인 아버지의 기질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기억한다.

“어릴 때 뭐든지 집으로 팔러 왔어요. 식당을 하니까 야채과일을  팔러왔어요. 보리밥이란 것을 몰랐어요. 당시에 먹는 걱정이 많던 시절이었지만 쌀밥에 고기 국을 운전수나 기사 조수들을 위해 하는 밥집을 운영하던 터라 결핍이 없이 살았다고 봐야지요”

대곶초등학교 2학년에 이어 대명초등학교 3학년을 다닌 그는 공부를 위해 서울로 상경해서 배문고등학교를 다녔다. 육군병장으로 씩씩하게 제대하고 매형 이재중(인천시 교육청 근무)씨의 권유로 26세에 공무원으로 입문했다.

 공직인생, 얼굴 붉히지 않겠다 
다소 늦게 시작된 공직에서 그는 민원인들을 위한 업무처리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서류작업과 시간을 되도록 빨리 해결해주려 밤새워 일해주면 바로 찾아갈 수 있잖아요.되도록 노력했습니다만 안 되는 민원이라도 해당부서와 협력해 방법을 모색해 보는 거지요”

공직인생은 자기마인드로 긍정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 그의 공직철학이다. 민원인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공무원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성취감을 크게 가질 수 있는 업무였다고 믿고 있다.

“초창기에는 정부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다라는 자부심과 현안사업은 국가의 일이다라는 공직자의 자세로 일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전화로 마구 욕을 하면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무원으로서 돋보이는 그의 소신은 어떤 욕을 먹어도 얼굴을 붉히지 않겠다는 확실한 자세였다. 행정경험이 풍부하고 성실한 책임감으로 솔직하고 거짓 없이 일한다는 것이 주위의 칭찬이다. 성격이 원만해서 대인관계가 좋다는 것도 그의 큰 장점이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어낼 수 있는 달인
대곶지역 뿐만아니라 선후배관계를 탁월하게 소통시키는 역할로 행정동우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행정처리를 위해서는 마른날 궂은날을 가리지 않고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다.

설득력 있는 행정으로 현장을 파악하고 안 되는 부분은 왜 안 되는 지를 소통시킨다. 때문에 크고 작은 민원들이 그의 손을 거쳐 해결되고 문제의 해답을 만나게 된다.

민선5기 직소민원실장으로 그의 자리는 늘 귀를 크게 열고 눈을 맑게 뜨고 들어주고 만남이 이어지는 자리이다. 화가 나서 무섭지 않을 이가 없겠지만 협상의 달인인 김준태 직소민원실장은 5분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상대방의 신뢰를 얻어내는 고수이다

공직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
“공직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대다수공직자들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자세와 행동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가면 일을 안 하고 엎드려 있다는 인식은 해소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직소민원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강화를 가다가 보니 김포시안내판이 녹슬어 있어서 다시 수정하도록 했습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보면 김포시가 더 좋아지고 많은 불합리한 일들이 시정될 수 있습니다. 나는 김포시의 주인이다라는 생각이 너무 중요한 겁니다”

수학을 잘하던 명석한 두뇌로 법 계통에 유능함을 보인 김준태 실장은 법무계통에 능숙한 공직자였다. 1982년에 군청 감사계를 시작으로 양촌면 산업계장(1996) 감사, 예산 경리, 식산과 운수담당 등으로 업무능력을 발휘했던 공무원이다.

바다사나이인 아버지의 아들중에 유일하게 김포를 떠나지 않고 대명초등학교총동문회장등으로 지역과 동문들을 위한 봉사에 힘쓰기도 했다.

“대곶은 참 순수한 곳입니다. 시골스러운 곳이고, 민원도 순수합니다. 고향김포를 잊어버리고 서울사람이 되는 법보다는 지역을 끈끈하게 만드는 결정체가 필요합니다”

두 번의 공직 인생
김포시청에서 최고참공무원으로  22년을 공직자로 살고 다시 9년만에 다시 복귀한 최고참공무원중의 한 사람인 김준태 직소민원실장은 삶이 무엇인지 안다.

공직생활을 두 번 하면서 공직과 그를 넘어 사회를 모두 알고 있는 장점을 두루 가지고 있다. 처음과 끝을 아는 사람이 가진 선선한 눈빛, 하나의 세계만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을 아는 사람의 여유와 경험에 의해 조급해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은 원만한 공직인생을 살고 있다.

“밖에 나가서 현실을 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은 한 쪽만 봐서는 균형이 맞지 않아요. 과거에는 흉으로 면서기나 하라고 했지만 지금은 참 좋은 것이 공무원 아닙니까?”

주말에는 등산으로 간혹 몸과 마음을 살피고, 윤경희(54)씨와 사이에 김민지(29)양과 김소정(20)양 등 아름다운 가족들과 살면서 거짓 없고 솔직한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이 가을의 풍성함을 마음껏 느끼길 기원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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