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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 사람의 속도
   
▲ 유인봉 본지 대표이사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들어서려면 고갯길을 헐떡거리며 넘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히면 실바람이 불어와 그렇게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던 기억이 새롭다.

자신의 발걸음이 아니면 실어다줄 대체물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사람의 속도만큼 살았다.
그리고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생각이 넘나들며 숨이 잘 흐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점점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잃어간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것, 깔끔한 것, 효율적인 것, 똑바로 뚫린 길, 굽은 것은 펴고 딱딱 맞아 들어가야 살 것 같은 그런 생각들이 미련 없이 많은 것들을 버렸다.

그런데 화덕에 구운 생선이 더 맛있고 장작 타는 냄새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인간은 결코 화학적인 것들만의 결합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새것만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시간과 생각이 묻어나는 작고 오래된 것들이 그립다.

간혹 토요일이 되면 북악산도 가고 인왕산도 간다. 성곽 길을 걷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
도시 한 복판에서 산을 경험하는 것은 참 신난다고 말하는 것 이상이다.

사람들이 수많은 세월 오가다 생긴 흔적들이 안내의 역할을 한다.
바위조차 오랫동안 이어진 발자국을 형상대로 담아 놓고 있다.

인간의 생명이 백년이라면 그곳 한 자리에서 수많은 작은 인간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넓적한 자리를 내어주기도 했을 바위는 도대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이다.

조선을 넘어 고려시대의 누군가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면 잠시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보인다.

인왕산을 오르다보면 그 고갯길에 그렇게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옹기종기 붙어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편안하고 보고 있어도 그리웠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작은 방이 연상된다. 그리고 옛날 우리 집만 같아 보여 그리움으로 숨이 한 번 크게 쉬어지고 웃음이 입가에 떠오른다.

이제는 시간의 흐름과 리듬, 그리고 기억이 머무르고 있는 그런 사람과 장소가 필요하다.
사람이 사람 안에서 서로 기억의 리듬을 찾아내고 다시 헹구어내고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신도시에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억에 저장된 익숙하고 그리운 현장에서 얻는 치유는 어떤 약보다도 명약이다.
걷다보면 살아나가는 길로 연결된다.

불편한 고갯길을 넘어 사람의 속도로 천천히 보면 그렇게 돈이 아닐지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백화점에 진열된 ‘눈으로 보지만 손으로 가질 수 없는 것들’에 기죽지 않고 골목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것들에 눈을 맞출 일이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차를 타고 싱싱 달리며 느낀다면 그렇게 긍정으로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숨통이 트이는 하늘과 산과 바위의 불편한 곡선 길을 이리구불 저리구불 오르다보면 어느 사이 돌멩이 하나에서 의미를 얻고 시간을 머금고 오롯이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걷는 것은 사람의 속도이다.
차가 달리는 속도에서 병이 난 사람들은 사람의 속도로 돌아와야 한다.

걷는 것은 자신의 힘 만큼일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어지럽지도 않고 자신이 걸을 수 있는 한까지만 걷는다.
무거운 것은 저절로 짐을 내려놓고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전신을 타고 흐르면서 편안한 마음이 된다.
내 마음이 좋으면 배려가 저절로 나온다. 그것이 삶의 여유로움이다.

고갯길을 오르려면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무턱대고 서두르면 숨이 턱에 닿고 함부로 달릴 수가 없다.
우리는 단지 두발과 두 손을 내 저으며 생명을 살리는 여유로움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어제는 10여 년 전 이러저러한 인연의 사람이 찾아온다기에 어서 오라고 했다.
그냥 고향 같은 마음으로 앞뒤 없이 반가운 마음, 그는 밤새 엄마를 만나러 오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보다도 더 머리가 하얀 그이가 엄마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이 흘렀다.
항암치료를 한 지 두 어 달이 지났다고 했다.

한걸음 한 걸음 고갯길을 넘어가는 법을 나누었다.
대학원 마지막 논문 걱정을 했다.

“오늘 죽으면 다 끝나요” 군더더기 없는 내말에 그는 쉽게 정리했다.
저녁밥을 나누고 검을 하늘의 별과 저녁의 산 내음새를 같이 맡고 보여주었다.
우리가 숨 쉬는 길, 간혹 고갯길을 만나지만 천천히 오르다보면 못오를리 없으리라.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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