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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적 언어의 힘, 인생은 말하기보다 듣기
   
▲ 유인봉 대표이사

시간이 갈수록 인생은 참 오묘한 사람들의 인생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 할 때보다는 귀를 열어놓고 듣는 일이 더 중요하고 즐거워진다. 물론 때로 수많은 고통을 같이 나누는 수고도 따른다.

살아가는 이야기는 결코 허구가 아니기에 구구 절절하게, 두툼한 소설보다도 더 감동적이기도 하고 뭉클하다. 그 사람의 일생을 담보한 이야기들은 결코 허상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넘어선 어떤 가슴 아픈 동일성과 일체의식을 가져다 준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마음에 그렇게도 오래 머문다.
슬픔의 고개나 아픔을 동일하게 느끼게 하는 힘과 일체가 되어 같이 아픈 고개를 넘어 전진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고백’을 통해 나오는 언어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상대방의 생각과 삶의 깊이에 깊이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허구가 아닌 그 사람의 인생을 이루어가는 날실, 씨실이고 그 사람을 이룬 섬세한 바탕이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도 이야기를 하든, 글을 통해서든, 생활을 하든 상대방의 생각에 깊이 동참함으로써 내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엇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결국 ‘너’를 만나는 것은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으로 ‘넘어가 봄’을 통해서 진정한 나를 찾아 ‘되돌아옴’을 경험한다.
다른 인생으로 넘어가서 배우고 자신의 문화와 자신의 깊은 긍정으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한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전진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남을 아는 것은 상대방의 거울 앞에서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실존적 체험을 주체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러기에 위대하다.

이 세상을 살면서 체험한 각자 자신의 독특한 주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위대하다.
인생은 두뇌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체험을 통해 몸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논리나 합리로는 다 담아낼 수 없지만 담아지지 않는다하여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증명하고자 하면 “태양 앞에 켜 놓은 촛불”이 될 수도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백되어지고 공명이 되는 세상은 결코 부정적이 될 수 없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이상의 삶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자신의 이력을 다시 찾아내고 써 내려간 사람들의 고백을 거울삼아 이 봄, 새롭게 인생의 밭을 갈아보면 어떨까!

삶은 그렇게 신화적이지는 않지만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삶은 거울이 되어주고 이정표가 되어준다.
또한 나의 삶도 진주가 되고 아픔을 통해 진주가 되기까지 모래알의 섬세한 고통은 누군가에게 인내가 되고 명약이 되어줄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한 입’보다 더 ‘두 귀’가 커야 될 이유가 분명히 있다.
깊숙하게 듣고 신중하게 말하기, 그것이 인생의 자연스러움이 되면 좋겠다.

‘두 귀’로 들어온 환한 에너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추어볼 일이다.
‘너와 나의 하나 됨’을 통하여 우리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

너와 나의 다름과 일치를 통하여 우리는 인종과 문화와 역사를 넘어 하나로 밝게 빛날 수 있다. 하나 됨은  조화로움과 상생, 화합과 통일을 다 포함하는 동그라미이다.
인생, 어쩌면 하나의 입보다는 두 개의 귀를 통해 살아갈 일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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