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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많이 보내드리니 걱정 마셔
사람속에 살면서 사람이 그립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더구나 누구라고 알려져 있어서 잘 못 하면 구설 수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극
구 조심하면서 산다.
오히려 이름 난 사람의 아내들이 훨씬 더 외로움을 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유명인
아내의 외로움은 그래서 미용실 주인이나 맛사지를 해주는 이가 더 잘 위로해 주고 속내를
털어놓는 대상이 된다.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잘 아는 듯 하면서도 감추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나 한다. 사람은 자신과 경쟁적이거나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은밀한 마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 듯 하다. 때로는 나와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풀리
고 진정한 마음을 다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우면서도 사람은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이라 이야기를 해 놓고도
애태우는 일이 사람사인지도 모른다.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운전 중이었고 자신의 삶이 참 힘들다고 느껴지면서 늘 힘들게 사는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나는 그이가 하필이면 왜 나를 자신과 같이 느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한참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에게 금과 은을 줄 수는 없지만 비밀창고가 되었
다.
나에게도 비밀 창고가 있다. 세상적으로 아무런 수식어가 없는 그녀를 만난 것은 행복한 일
이다. 그녀는 묘한 능력이 있어서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를 안 하는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아주는
여성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이를 만나기 위해 멀고 가까움을 탓하지 않고 찾는 그런 사람이
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 그녀는 특별한 사
람이다. 어떤 정치적인 직함이나 어떤 라벨도 달지 않았다. 목소리도 예쁘다기보다는 약간
허스키한 색깔이고 키도 크지 않다. 반 바지에 티사츠를 입고 긴 머리를 한 외모로 보자면
그녀는 너무나 평범한 마흔 살의 여성이다.
그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늘 바쁜 듯이 보인다.
그리고 전심을 다해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로 비추어준다.
나는 힘이 들 때마다 그녀에게 늦은 시간이라도 전화를 한다.
그러면 그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꼭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물론 그가 나의 이야기와 삶 속에 하나가 되어서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내 모습을 잠시라도 이야기하면서 쉼을 얻고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목소리가 크지만 그이도 목소리가 참 크고 살아있다.
그런데 그에게 내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는 나의 거울이 된다.
죽을 듯이 힘들다고 말하면 엄살이라고 말하고 내가 할 수 없다고 말하면 한 마음으로 한
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거냐고 야단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일단 긍정을 해 놓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하면서 나를 추스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피를 나누지도 않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구나라고.
내가 운다고 같이 울어주기보다는 화가 나서라도 그 상황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그가 늘 말
미에 하는 말이 있다.
“마음을 많이 보내드리고 있으니 걱정마셔”라는 말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는 말을 듣노라면 힘이 된다. 신을 믿으면서도
힘을 얻지만 사람한테 상처받고 넘어져도 그래도 사람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이가 있고 말로써 살리는 이가 있다.
그이를 만나고 나서 더욱 더 담대해지는 법을 배우면서 산다.
간혹 나는 서운하다.
“그래 얼마나 힘들겠냐?”고 말하면 더 고마울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얼마나 힘들지 다 이해한다는 말보다는 “야! 바보같이 그까짓 물에서도 못나오
냐?”고말해서 그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해서 전화를 끊고
나면 늘 고마워진다.
사탕같이 달아서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쓸개처럼 쓴 맛을 보고 나면 다른 맛을 다 맛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과 같은 만남.물론 살과 피를 나눈 사람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에게 살과 피
를 주는 만큼 생기를 준다는 것은 참 놀라운 경험이다.
내 마음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제119호 4면/2001년9월10일자>

유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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