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재원목사(사랑의동산교회 담임)

지인으로부터 지난해 초여름에 개똥쑥 씨를 건네받았다.

개똥쑥 약 효능에 관한 길고 긴 설명과 함께 어떻게 싹을 내서 키워야 하는지에 관한 경험에 관해서도 자세히 들었다

내 손바닥에 올라온 녀석들은 겨자씨보다도 작고 가벼워 조금 거센 호흡에도 다 날아가 버릴 정도의 씨앗들이었다.

분주함과 농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핑계 속에 바로 서랍 속에 두었다. 어느 날 문득 생명을 잉태하고 있을 씨앗을 파종하지 않고 그냥 한해를 보내는 것은 죄를 짓는 일 같아 씨 뿌리는 일에 도전했다.

미련스럽게도 그 무더운 복더위에 말이다.

재활용 아이스박스를 여러 개 구해 그늘이 있는 담 밑에 두고 고운 모래와 부드러운 흙을 골라 모판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모래와 섞어 정성스레 뿌려놓았다. 조물주의 약속대로 씨앗이 뿌려진 그곳에 새로운 생명의 싹이 움텄다

참 놀라왔다. 홍도평 평야의 그렇게 많은 벼들과 풀들, 잡초들의 나고 짐을 보았건만 내 손으로 뿌린 씨앗들의 발효는 마치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 무희들같이 보인다.

얼마나 정성스레 물을 주었을까? 더러 물이 조금 늦어 시들어 있는 녀석들을 보며 마음이 같이 시들기도 했고, 이슬 먹은 이른 아침의 생기를 보이노라면 그 자체로 약효능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키도 크지 않은 것이 억세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지내며 늦가을이 되자 그 작은 녀석들이 꽃봉오리를 올렸다. 저마다 힘을 다해 올라온 듯 그 작은 꽃속에서 -얼마나 작은지 향기도 모양도 없다-씨앗을 품으니 그 씨앗이 그리도 작았구나 깊은 이해심도 발동한다.

생명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절로 탄성과 조물주의 지으심, 창조력에 대한 찬양이 울려나온다.
그렇게 신비감에 젖어 멋진 꽃을 기대하고 있을 무렵, 계절은 추호도 용서나 미련 없이 찬 서리 내리는 겨울로 접어들고 말았다.

어어, 꽃 한 송이도 제대로 피지 않았는데…….
말릴 틈도 없이 첫눈은 내리고 여전히 20cm도 안 되는 키로 꽃망울 까지 가지고 있는 녀석들 위로 얼음을 얼릴 능력이 충분한 찬바람이 몰아쳤다.

너무 급해서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어쩌면 좋아요? 이대로 겨울을 나는 다년초인가요?”
“아니요! 그건 일년초입니다. 꼭 씨를 받으셔야 하는데”

“키가 20cm 도 안되는데요?”
“아니요! 그거 1m씩 자라는 것이예요…….”

“이 아이스박스에서요?”
“아니요! 밭에다 이식했어야지요…….”

아뿔싸…….
씨를 너무 늦게 뿌려서 클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단다.

너무 더워서 이식하면 오히려 죽을 것만 같아서 그냥 담벼락 밑에서 키웠는데 반드시 이식했어야 한단다.

이를 어찌하노.너무 죄스럽고 미안하고 안쓰러웠지만 어찌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꽃망울도 그 푸르른 잎도 누렇게 변한 채 그 모진 겨울을 그렇게 보냈다.

새해,입춘이 지난 며칠 뒤에 연탄재로 늘 가려져 있던 아이스박스 텃밭에 개똥쑥이 일어나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푸른 빛 얼굴 속에 씨앗이 아닌 자신의 온몸으로 한겨울을 견디고 다시 일어나고 있다
그 정확한 입춘의 시간에. 일년초라 했는데…….

지금 그 파란 싹들은 지난해의 누런 잎들을 요람삼아 힘차게 새 생명의 기운을 올리고 있다
자신들을 죽였던 그 담벼락 아래서, 그 아이스박스 속에서, 그 주인의 눈앞에서 새 생명을 움터 올리고 있다.

인류의 생명을 위해 왔다가 십자가처형이라는 모진 아픔 속에 숨지셨던 예수생명의 기운이 다시 일고 있다.

부활절이다.
개똥쑥도 다시 살아 푸름의 희망으로 나를 적시는데 예수의 새 생명 기운이 새로운 소망되어 밀려오는 속에 나를 던져 넣음이 무엇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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