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김포역사 김진수의 김포역사이야기 김포실록(2007)
24. 헌종실록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김포이야기 <김포실록>

24. 헌종실록 1건  
  
1)헌종 8권, 7년(1841 신축/청 도광(道光) 21년) 3월 15일 경자 1번째기사

●우의정 조인영이 소장의 서계와 감부하지 못한 수령의 문제를 아뢰다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조인영(趙寅永)이 아뢰기를,
 
“도왜(島倭)의 접대에는 본디 약조가 있으므로 털끝만큼이라도 어기는 것은 마땅하지 못한데, 연전에 대찰(代察)의 서계(書契)를 아뢴 것은 매우 외람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당해 수령(守令)을 문비(問備)하고, 인하여 효유(曉諭)하여 물리쳐 보내게 하기를 청하기까지 하였었습니다. 이제 4년 뒤에 또 번거롭게 아뢰면서 전에 듣지 못한 소장(少將)이 서계한 것으로 거듭하니, 변방(邊方)의 체례(體例)로 생각하면 아주 놀랍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대찰의 서계는 약조에 어그러지기는 하나 이미 아뢰었고, 차왜(差倭)가 오래 지체하는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특별히 먼 데 사람을 회유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도록 허락하였으나, 별폭(別幅)은 더욱 거론하는 것이 마땅하지 못합니다. 소장의 서계에 이르러서는 곧 약조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이므로 대찰의 서계와 같은 예(例)로 논할 수 없습니다. 이 뜻으로 해부(該府)에 분부하여 하나는 허락하고 하나는 허락하지 않는 사리(事理)를 관왜(館倭)에게 상세히 칙유(飭諭)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적법(糴法)이 아주 무너진 것이 이미 말할 수도 없어서 전에 수시로 폐단을 바로잡을 뜻으로 적곡(糴穀)을 받아들이지 못한 수령(守令)을 차례로 감등(減等)하는 율(律)을 청하기까지 하였었습니다. 근래에 잔폐(殘弊)한 국지(局地)에서는 오로지 면하려고 꾀하는 것을 일삼아, ‘당년에 감부(勘簿)하지 못하면 그 죄가 작으나 뒷날에 드러나는 것이 있어서 죄가 되는 것은 크다.’ 하여 모두 편리한 방법을 가리는 버릇을 부려서 체임(遞任)되기를 꾀하는 계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근일에 김포(金浦)·풍기(豐基) 두 수령의 일을 보더라도 그 말은 실속을 힘쓰는 듯하나 그 일은 실로 규피(規避)하는 데로 돌아갑니다. 대저 겨울을 지내도 감부하지 못한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이후로 감부하지 못한 수령은 한결같이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율에 따라 시행하는 것으로 정식(定式)하고, 제도(諸道)·제도(諸都)에 공문을 보내어 알리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영인본】48책 485면【분류】*외교-왜(倭)/*재정-국용(國用)/*구휼(救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진수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