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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고종실록(70-81)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김포이야기 <김포실록>

26. 고종실록(70-81)

70)고종 30권, 30년( 1893 계사 / 청 광서(光緖) 19년) 2월 7일 경신 2번째기사

●내무부에서 통진, 풍덕, 영종, 장봉의 둔전을 해연 총제영에 이속시킬 것을 아뢰다
내무부(內務府)에서, ‘해연 총제영(海沿總制營)의 제치 절목(制置節目)을 써서 들입니다.’라고 아뢰었다. 또 아뢰기를,
“해연 총제영을 막 신설하였으니 이전 해방영(海防營)에서 관할하던 통진(通津), 풍덕(豐德), 영종(永宗) 장봉(長峯)에 있는 둔전답(屯田沓)을 모두 해영(該營)에 이속시켜 군수(軍需)에 보충하여 쓰도록 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영인본】 2책 448면
【분류】 *농업-전제(田制) / *군사-지방군(地方軍) / *재정-군자(軍資)

71)고종 30권, 30년(1893 계사/청 광서(光緖) 19년) 6월 10일 경신 2번째기사

●의정부에서 총제영에 소속된 인천, 부평, 김포, 양성에 주관하는 군영의 필요성을 아뢰다
의정부(議政府)1)에서 아뢰기를,
“경기 감사(京畿監司) 이경직(李耕稙)의 보고를 보니, ‘남양(南陽)을 지금 총제영(總制營)2)에 이속(移屬)하였습니다. 해읍(該邑)3)소속 인천(仁川), 부평(富平), 김포(金浦), 양성(陽城) 등 네 고을에 있는 군대에 주진(主鎭)4)을 두어야 할 것이나 군정(軍政)에 관계된 일이므로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군제와 관계되는 만큼 응당 소속이 있어야 할 것이니 남양 대신 인천부(仁川府)로 주진을 정하여 관할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영인본】2책 459면
【분류】*군사-지방군(地方軍)/*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군사-군정(軍政)

각주)
1)의정부[議政府] :조선시대 정치·행정을 담당한 최고 관청을 말한다. 도당(都堂)·묘당(廟堂)·황 각(黃閣) 등의 별칭이 있다.
2)총제영(總制營) :
3)해읍(該邑) : 그 읍
4)주진(主鎭) :조선 시대 지방 군사 조직 단위의 하나. 각 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 종2품)가 주재하는 15개소의 육진(陸鎭), 혹은 병영(兵營)과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 정3품)가 주재(駐在)하는 17개소의 수진(水鎭), 혹은 수영(水營, 또는 海鎭)을 말함.

72)고종 30권, 30년(1893 계사/청 광서(光緖) 19년) 6월 22일 임신 1번째기사

●호조에서 재난을 당한 성균관 토지인 김포의 전답의 조세에 대해 유예하도록 아뢰다
호조(戶曹)에서 아뢰기를, “지난해 겨울 성균관(成均館)에서 계하(啓下)받은 문서와 관련하여 성균관에서 절수전(折受田)으로서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 경상도(慶尙道)에 있는 것들은 모두 본조에 환속시켜 원 토지대장에 등록하고 조세를 내게 하였습니다.
 
그 중 김포군(金浦郡)에 있는 70결(結) 23부(負) 1속(束)의 밭과 논은 오랫동안 포락(浦落)되어 징수할 길이 없습니다. 누차 보고가 그치지 않으니 해군(該郡)에 있는 성균관 토지를 모두 원 토지대장에 올리고 조세를 내는 것과 대신 획급해 주는 문제는 아직 그냥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영인본】2책 459면【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재정-국용(國用)/*농업-양전(量田)

73)고종 32권, 31년(1894 갑오/청 광서(光緖) 20년) 7월 19일 계사 4번째기사

●의금부에서 민영달을 김포군에 투비한다고 보고하다
의금부(義禁府)에서, ‘민영달(閔泳達)을 김포군(金浦郡)에 투비(投畀)하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영인본】2책 508면【분류】*사법-행형(行刑)
 
74)고종 33권, 32년(1895 을미/청 광서(光緖) 21년) 5월 26일 병신 1번째기사

●감영, 안무영과 유수 폐지에 관한 안건, 지방 제도의 개정에 관한 안건을 반포하다
조령을 내리기를, “짐(朕)이 우리나라의 유신(維新)을 맞아 실지 혜택을 백성들에게 베풀고자 하니 짐의 말을 명심하여 들을 것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든든해야 나라가 편안해지는데 백성을 보존하는 방도는 정사를 하는 관리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 왕조의 지방 제도가 완전히 훌륭한 것이 못되다 보니 주(州), 현(縣)이 일정하지 못하고 필요 없는 관리가 많아서 가혹한 세금을 거듭 거두는 폐해가 백출(百出)하여 위의 은혜가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백성들의 실정이 위에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아! 거문고와 비파가 조화되지 않으면 다시 뜯어고쳐야 하는 만큼 정사하는 도리는 때에 따라서 알맞게 제정해야 한다. 이제 감사(監司), 유수(留守) 등 낡은 제도를 없애고 부(府)와 군(郡)의 새 규정을 정하여 폐단의 근원을 막아버림으로써 만백성과 함께 태평한 복을 함께 누리려고 하니 그대들 모든 관리와 백성은 짐의 뜻을 체득하라.”하였다.
 
칙령(勅令) 제97호, 〈감영, 안무영과 유수 폐지에 관한 안건〔監營按撫營竝留守廢止件〕〉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 칙령 제98호,〈지방 제도의 개정에 관한 안건〔地方制度改正件〕〉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지방 제도(地方制度)〉
 제1조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아래에 열거하는 각 부를 둔다.
 한성부(漢城府), 인천부(仁川府), 충주부(忠州府), 홍주부(洪州府), 공주부(公州府), 전주부(全州府), 남원부(南原府), 나주부(羅州府), 제주부(濟州府), 진주부(晉州府), 동래부(東萊府), 대구부(大邱府), 안동부(安東府), 강릉부(江陵府), 춘천부(春川府), 개성부(開城府), 해주부(海州府), 평양부(平壤府), 의주부(義州府), 강계부(江界府), 함흥부(咸興府), 갑산부(甲山府), 경성부(鏡城府)
 
제2조
앞 조항 외에는 종래의 목(牧), 부(府), 군(郡), 현(縣)의 명칭과 부윤(府尹), 목사(牧使), 부사(府使), 군수(郡守), 서윤(庶尹), 판관(判官), 현령(縣令), 현감(縣監)의 관명(官名)을 다 없애고 읍(邑)의 명칭을 군(郡)이라고 하며 읍의 장관(長官)의 관명을 군수(郡守)라고 한다.
 
제3조
각 부의 관할 구역은 아래와 같다.
 
한성부(漢城府)【한성군(漢城郡), 양주군(楊州郡), 광주군(廣州郡), 적성군(積城郡), 포천군(抱川郡), 영평군(永平郡), 가평군(加平郡), 연천군(漣川郡), 고양군(高陽郡), 파주군(坡州郡), 교하군(交河郡)이다.】
 
인천부(仁川府)【인천군(仁川郡), 김포군(金浦郡), 부평군(富平郡), 양천군(陽川郡), 시흥군(始興郡), 안산군(安山郡), 과천군(果川郡), 수원군(水原郡), 남양군(南陽郡), 강화군(江華郡), 교동군(喬桐郡), 통진군(通津郡)이다.】
 
<중략> 
제4조
각부 관청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한성부【한성】, 인천부【인천 제물포(濟物浦)】, 충주부【충주】, 홍주부【홍주】, 공주부【공주】, 전주부【전주】, 남원부【남원】, 나주부【나주】, 제주부【제주】, 진주부【진주】, 동래부【동래 부산(釜山)】, 대구부【대구】, 안동부【안동】, 강릉부【강릉】, 춘천부【춘천】, 개성부【개성】, 해주부【해주】, 평양부【평양】, 의주부【의주】, 강계부【강계】, 함흥부【함흥】, 갑산부【갑산】, 경성부【경성】
 
부칙(附則)
 
제5조
본 칙령은 개국(開國) 504년 윤(閏)5월 1일부터 시행한다.
 
제6조
본 칙령을 시행하는 날에 현임 부윤(府尹), 목사(牧使), 부사(府使), 군수(郡守), 서윤(庶尹), 판관(判官), 현령(縣令), 현감(縣監)의 관직에 있는 자는 따로 임명하지 않아도 본 칙령에 의하여 각기 그 군(郡)의 군수가 된다.
 
【영인본】2책 564면【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사법-법제(法制)

75)고종 33권, 32년( 1895 을미 / 청 광서(光緖) 21년) 8월 25일 계사 3번째기사

●의화군 이강을 특파 대사에 임명하여 답례 방문을 명하다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堈)을 특파 대사(特派大使)에 임용하고 이어 영국,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각국을 답례 방문하라고 명하였다.

법부 대신(法部大臣)인 종1품 서광범(徐光範)을 학부 대신(學部大臣)에 임용하고 칙임관(勅任官) 1등에 서임하였으며, 3품 장박(張博)을 법부 협판(法部協辦)에 임용하고 칙임관 3등에 서임하는 동시에 대신(大臣)의 사무를 대리하라고 명하였다.

통진 군수(通津郡守) 정인흥(鄭寅興)을 법부 민사 국장(法部民事局長)에 임용하고 칙임관 4등에 서임하였으며, 금구 군수(金溝郡守) 조중응(趙重應)을 법부 형사 국장(法部刑事局長)에, 정주 군수(定州郡守) 조지현(趙贄顯)을 의주부 관찰사(義州府觀察使)에 임용하고 모두 주임관(奏任官) 2등에 서임하였다.
 
【영인본】 2책 57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러시아[露] / *외교-독일[德] / *외교-영국[英] / *외교-구미(歐美)

76)고종 34권, 33년( 1896 병신 / 대한 건양(建陽) 1년) 12월 9일 양력 3번째기사

●안산에 불법으로 무덤을 쓴 윤상희를 방면하도록 하다
궁내부 대신 서리(宮內府大臣署理) 윤정구(尹定求)가 아뢰기를, “제릉(齊陵)의 안산(案山)에 불법으로 무덤을 쓴 총주(冢主) 윤상희(尹相熙)를 이미 풍덕군(豐德郡)에서 잡아 가두었는데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만큼 심상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법부(法部)로 하여금 나획(拿獲)한 다음 조율(照律)하여 엄히 감처(勘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후의 재관(齋官)들로 말하면 더없이 중요하고 삼가야 할 곳에서 신중히 살피지 못한 잘못이 없지 않은 만큼 모두 법부로 하여금 나문(拿問)하여 감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풍덕 군수 서리(豐德郡守署理)인 통진 군수(通津郡守) 강위영(姜緯永)은 지방관의 신분으로서 훈령(訓令)을 받고도 지체하면서 제때에 거행하지 않았으니, 사체(事體)로 보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역시 법부로 하여금 나문하여 감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이제 듣건대 제릉을 봉심(奉審)할 때 적발된, 안산에 불법으로 무덤을 썼다는 윤상희에 대한 일은 여러 사람들이 본 것과는 이미 사실이 어긋나는 만큼 특별히 방송(放送)하고, 전후의 재관들에 대해 감처하기를 청한 것은 그만두며, 훈령을 지체한 해당 지방관은 견책(譴責)하는 것이 좋겠다.”하였다.
 
【영인본】 2책 609면【분류】 *사법-재판(裁判)
 
77)고종 38권, 35년( 1898 무술 / 대한 광무(光武) 2년) 10월 1일 양력 2번째기사

●조병식을 통진군으로 3년 동안 귀양보내다
법부 대신(法部大臣) 신기선(申箕善)이 아뢰기를, “경기(京畿)의 연해 지역에 찬배(竄配)한 죄인 조병식(趙秉式)의 배소(配所)를 통진군(通津郡)으로 정하였는데, 연한(年限)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삼가 폐하의 재결(裁決)을 기다립니다.”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3년으로 마련하라.”하였다.
 
【영인본】 3책 58면【분류】 *사법-행형(行刑)

78)고종 38권, 35년( 1898 무술 / 대한 광무(光武) 2년) 10월 11일 양력 3번째기사

●조병식을 특별히 놓아줄 것을 명하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참작할 일이 없지 않으니, 통진군(通津郡)으로 3년간 찬배(竄配)되는 처분을 받은 죄인 조병식(趙秉式)을 특별히 놓아 주라.”하고, 또 조령을 내리기를,
“종1품 조병식에 대해 징계를 특별히 면제하라.”하였다.
 
【영인본】 3책 61면【분류】 *사법-행형(行刑)

79)고종 42권, 39년( 1902 임인 / 대한 광무(光武) 6년) 4월 3일 양력 2번째기사

●백성을 구제한 심능원과 이승조의 공로에 대한 표창을 명하다
내부(內部)에서 아뢰기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 이근명(李根命)의 보고서에, 통진군(通津郡)에 사는 전 참봉(前參奉) 심능원(沈能遠)이 의연금(義捐金) 수천 냥을 내어 부근의 백성 76호를 지난 해 음력 10월부터 지금까지 구제하였으니 표창하는 은전을 특별히 베풀어주기를 청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의로운 행동을 따져보면 참으로 가상하니 관직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이미 참봉을 지냈으니 6품으로 승급시켜 주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청양군(靑陽郡)에서 군의 유생(儒生)에 대하여 올린 장계에, 그 군(郡)에 사는 진사(進士) 이승조(李承祚)는 의연금 8만 냥을 내어 한 고을을 구제하였고 계속하여 배천군(白川郡)에서 군(郡)의 유생에 대하여 올린 장계에, 그 군에 사는 유학(幼學) 안교욱(安敎郁)은 의연곡 수 백 포를 내어 죽을 쑤어 가지고 떨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하면서 모두 표창하는 은전을 베풀기를 청하였습니다.

훌륭한 행위를 표창하는 정사에서 볼 때 마땅히 초사(初仕)에 조용(調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제칙을 내리기를,
“본부(本部)에서 적절히 조용하게 하라.”하였다.
 
【영인본】 3책 247면【분류】 *인사-관리(管理)

80)고종 42권, 39년( 1902 임인 / 대한 광무(光武) 6년) 5월 5일 양력 4번째기사

●각 관리들을 승급시키다
규장각 학사(奎章閣學士) 이순익(李淳翼)과 특진관(特進官) 서상우(徐相雨)를 정1품 보국숭록 대부(輔國崇祿大夫)로, 특진관 이용원(李容元)·엄세영(嚴世永)·정해륜(鄭海崙),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서상조(徐相祖), 종1품 민두호(閔斗鎬), 특진관 정낙용(鄭洛鎔)을 숭록 대부(崇祿大夫)로, 특진관 장석룡(張錫龍)·김석근(金晳根), 의관(議官) 송민수(宋敏洙)를 종1품으로, 특진관 이용직(李容直)·신헌구(申獻求)·최익현(崔益鉉), 의관 한성근(韓聖根), 정2품 이규복(李圭復)·조희승(趙羲升)·정완묵(鄭完默)·홍재정(洪在正)·이교창(李敎昌)을 정헌 대부(正憲大夫)로, 종2품 이면영(李冕榮)·서신보(徐臣輔)·신단(申檀), 특진관 조명교(趙命敎), 종2품 성대영(成大永)·김주순(金周淳), 의관 이희빈(李熙斌), 통진 군수(通津郡守) 이규중(李槼重), 종2품 정환익(鄭煥翼)·백락훈(白樂薰)·정준교(丁浚敎)·임영준(任永準)·이민중(李敏中)·이장회(李長會)·송원재(宋原載)·정인수(鄭麟洙)를 정2품으로, 특진관 정현영(鄭顯英), 종2품 이용화(李龍和)·박제억(朴齊億)·조장교(趙章敎)·이교응(李敎應)·구연홍(具然泓)·이교준(李敎駿)·서형순(徐珩淳)·이주긍(李周兢)·이병성(李秉性),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 김태제(金台濟), 종2품 김기인(金基仁)·조병익(趙秉益)·정주묵(鄭周默)·오정선(吳正善)·조준구(趙駿九)를 가의 대부(嘉義大夫)로 올렸다.

정3품 민영숙(閔泳肅)·엄석관(嚴錫瓘)·한용교(韓龍敎)·박제경(朴齊璟)·이면주(李冕宙)·송규회(宋奎會)·유남식(柳南植)·정학묵(鄭學默)·이인철(李寅轍)·홍우정(洪祐禎)·신극휴(申克休)·조진만(趙鎭萬)·이대직(李大稙)·신태관(申泰觀)·이종률(李鍾律)·이만유(李晩由)·이재하(李宰夏)·윤태원(尹泰元)·김준근(金寯根)·이연광(李演光)·박이정(朴履定)·이지영(李祉永)·성면호(成冕鎬)·조균하(趙均夏)·이희(李僖)·김오현(金五鉉)·박제순(朴齊恂)·윤승구(尹升求)·정동기(鄭東箕)·황호석(黃浩錫)·이수돈(李秀敦)·심노건(沈魯健)·이병규(李炳珪)·임영호(任榮鎬)·신두선(申斗善)·조필영(趙弼永)·이해만(李海萬)·김병훈(金炳薰)·송종오(宋鍾五)·안염진(安念鎭)·김재형(金在亨)·민치준(閔致駿)·이회원(李會源)·구달조(具達祖)·홍정석(洪鼎錫)·이보인(李輔仁)·윤영구(尹永求)·원세순(元世洵)·조용하(趙庸夏), 자산 군수(慈山郡守) 이돈행(李敦行)을 종2품으로, 종3품 김병창(金炳昌)·김병대(金炳大)·송교희(宋敎熙)·박용진(朴用鎭)·권성수(權聖洙)·송종렴(宋鍾濂)·안익풍(安翊豐)·김봉수(金鳳洙)·송인옥(宋寅玉)·신관조(申觀朝)·홍찬섭(洪贊燮)·이수영(李秀永)·이희성(李羲性)·이휘재(李徽宰)·이만정(李晩正)·강탁(姜鐸), 4품 김요협(金堯莢)·윤홍선(尹弘善)·윤기선(尹夔善)·이현의(李賢儀)·이정재(李鼎宰)·강준수(姜駿秀)·박제경(朴齊敬)·윤병관(尹秉觀)·김주호(金疇鎬)·홍우룡(洪祐龍)·황후연(黃厚淵)·김상현(金商絢)·박선양(朴宣陽)·이순재(李舜宰)·한진태(韓鎭泰)·이교승(李敎承)·정대무(丁大懋)·임백윤(任百潤), 용궁 군수(龍宮郡守) 이인긍(李寅兢), 산청 군수(山淸郡守) 김희원(金熙元), 목천 군수(木川郡守) 안기용(安淇瑢), 적성 군수(積城郡守) 권종철(權鍾哲)을 정3품으로 승급시켰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갈 때에 70세 이상인 4품 이상의 조정 관리들과 80세인 5품 이하의 조정 관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가자(加資)한 것이다.
 
【영인본】 3책 249면【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81)고종 48권, 44년( 1907 정미 / 대한 광무(光武) 11년) 7월 6일 양력 3번째기사

●조중응이 나인영 등의 공술에 대해 보고하다
법부 대신(法部大臣) 조중응(趙重應)이 아뢰기를, “평리원(平理院)의 질품서(質稟書)를 받고 그 내용을 보니, ‘피고 나인영(羅寅永), 오기호(吳基鎬), 김인식(金寅植), 김동필(金東弼), 강상원(康相元), 지팔문(池八文), 박종섭(朴鐘燮), 김경선(金京善), 황문숙(黃文叔), 황성주(黃聖周), 이경진(李京辰), 조화춘(趙化春), 이종학(李鐘學), 최상오(崔相五), 박응칠(朴應七), 황경오(黃景五), 이용태(李容泰), 민형식(閔衡植), 정인국(鄭寅國), 최익진(崔翼軫), 이석종(李奭鍾), 이기(李沂), 서창보(徐彰輔), 윤주찬(尹柱瓚), 이광수(李光秀), 윤충하(尹忠夏), 이승대(李承大), 김영채(金永采), 최동식(崔東植), 서정희(徐廷禧), 전덕준(全德俊)의 안건을 검사의 공소로 말미암아 이를 심리하니, 피고 나인영은 공술하기를,

「광무(光武) 9년 11월에 우리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양여한 새 조약이 협박을 받았다고 하나 황제 폐하가 윤허한 것이 없고 또 참정대신(參政大臣)이 날인한 것이 없습니다. 아! 저 5적 이지용(李址鎔), 이근택(李根澤), 박제순(朴齊純), 이완용(李完用), 권중현(權重顯)이 제멋대로 가(可)자를 써서 승인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정권과 전국의 이권을 모두 양여함으로써 2천만 민족을 내몰아 남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국권을 손상시킨 자에 대한 형률(刑律)이 이미 법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근심과 울분이 치밀어 사람마다 역적을 처단하려는 의리를 이룩하려 하였습니다. 오기호, 김인식과 함께 같은 마음을 가지고 협력해온 김동필, 박대하(朴大夏), 이홍래(李鴻來), 이용채(李容彩)를 지휘하겠다고 약속하고 시골 의병의 나머지 무리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탁지부 대신(度支部大臣) 민영기(閔泳綺)와 법부 대신(法部大臣) 이하영(李夏榮)도 새 조약에 대하여 뒤에서는 동의하고 앞에서는 부인하였으니 하나같이 모두 처단하는 것이 옳다고 하여 간신을 처단할 7장의 글을 만들어 김동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민영기, 이하영은 이미 부인한다는 글자를 써서 표시하였으니 같이 논할 수 없다고 하여 서로 의논하여 그냥두기로 하였으나 그 간신 처단장〔斬奸狀〕 2장을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음력 12월 그믐날 거사를 하려다가 모집한 무리들이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단행하지 못했고, 음력으로 본년 2월 5일에 5적의 각 집들에 모집한 무리 각각 30명씩 각기 권총을 가지고 문이 열리자 곧장 들이닥치기로 약속하였다가 해당 무리 가운데 지레 놀란 사람들이 생겨 단행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달 8일 태자 전하(太子殿下)의 생신날 5적이 대궐에 들어가는 길에서 일시에 모두 처단하기로 다시 기도하였다가 5적들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같은 달 12일 5적들이 출근하는 길목에 무리들을 갈라서 매복시키고 동시에 저격하려고 했습니다.

사동(寺洞) 길에서 권중현을 사격하였으나 맞히지 못했고 다른 곳들에서는 미처 손도 써보지 못하고 놀라서 흩어지는 통에 며칠간 종적을 감추었다가 다시 거사할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무리 강상원(康相元) 등이 차례로 체포되는 바람에 무고한 사람들이 일망타진될 우려가 없지 않아 같은 달 19일에 오기호, 김인식과 함께 간신 처단장과 각 증거서류들을 가지고 스스로 본 원을 찾아갔습니다.」 하였습니다.
 
피고 오기호는 나인영과 꼭같은 생각으로 치밀하게 협력하고 정인국에게 지화(紙貨) 300환(圜)을 두 번에 나누어 청구하고 김동필, 박대하에게 내주어 무리들을 모집하고 권총을 구입하게 하였습니다.
 
피고 김인식은 나인영, 오기호와 같은 마음으로 협력하여 이용태에게 나인용 등이 음모한 일을 말해주고 운동비를 청구하여 말하기를, 「성사한 후에 대감(大監)께서 대신(大臣)이 되면 나라 일을 위해 매우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며, 지화 1,700환을 구하여 나인영, 오기호에게 주어서 무리를 모집하여 총을 구입하게 하였습니다.
 
피고 김동필은 나인영 등과 꼭같은 생각으로 박대하, 이홍래를 나인영의 집에 데리고 와서 나인영, 오기호와 서로 낯을 익히게 하고 박대하는 이용태의 집에 자주 찾아가 만나서 이와 박 두 사람과 일마다 치밀하게 준비하게 하고 나인영, 오기호에게서 지화를 받아 박대하에게 주어 대전(大田)에 가서 흉한 일을 집행할 무리를 모집해 오게 하였습니다.

김사문(金士文)을 인천(仁川)에 보내어 권총을 구입해오게 하고 모집해온 무리들을 각 처에 숨겨두었다가 음력으로 본년 2월 12일에 새문〔新門〕밖에 나가서 무리들에게 간신 처단장과 권총을 나누어 주었으며 서태운(徐泰云)을 지휘하여 학부 대신 이완용을 요격하도록 단속하였습니다.
 
피고 강상원은 본래 의병의 잔당으로서 음력으로 본년 2월초에 대전 지방에서 박대하의 모집에 응하여 서울에 올라와서 같은 달 12일에 이름모를 황 주사(黃主事), 지 참봉(池參奉), 이 만장봉(李萬丈峯) 등 18명과 함께 사동 길에서 지켜보다가 이홍래의 명령을 받아 군부 대신 권중현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하였습니다.
 
피고 지팔문과 박종섭은 같은 달 초에 대전 지방에서 이름모를 김 주사(金主事)의 모집에 응하여 서울에 올라와서 같은 달 12일에 김 주사의 명령을 받고 대신을 쳐 죽일 생각으로 남문(南門) 밖의 정거장 근처에서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겁에 질려 도주하여 진위군(振威郡)에서 체포되었습니다.
 
피고 김경선은 같은 달 초에 일을 보려고 서울에 올라왔다가 나인영 등이 모의한 일을 이홍래에게 얻어듣고 같은 달 12일에 나인영, 오기호를 따라 광화문(光化門) 밖에 이르러 참정대신(參政大臣) 박제순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피고 황문숙과 황성주는 같은 달 12일에 서태운을 따라 서문 밖의 큰길가에서 각각 총과 몽둥이를 가지고 학부 대신 이완용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길가에서 음식을 사는 순간 그 대신이 잠깐 사이에 지나가 미처 손대지 못하였습니다.
 
피고 이경진은 서태운을 따라 서문 밖에서 법부 대신 이하영이 지나가는 것을 지키다가 손을 대지 못하였습니다.
 
피고 조화춘은 이경진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서 같은 달 8일에 박대하와 대신을 암살하려는 일에 동의하고 참여하였다가 같은 달 9일에 먼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피고 이종학은 같은 달 초에 서태운의 모집에 응하여 서울에 올라와서 같은 달 12일에 서문 바깥 길에서 서태운과 성명을 모르는 8인과 함께 각각 총과 몽둥이를 들고 대신을 죽일 생각으로 함께 지키다가 손대지 못했고, 서태운 등과 함께 통진(通津) 지방의 성명을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돈 50냥을 뺏어 가지고 나올 때 그 동리 사람들이 붙잡기 위하여 포위하고 총을 쏘기 때문에 서태운도 총을 쏘고 함께 도주하여 수원(水原) 지방으로 달아나 체포되었습니다.
 
피고 최상오와 박응칠, 황경오는 같은 달 12일에 여러 대신들을 살해하기 위하여 약속한 장소에 갔다가 손을 미처 쓰지 못하고 즉시 도망쳐 돌아가서 같은 무리 20여 명과 함께 각기 총과 몽둥이를 가지고 금산군(錦山郡) 보광리(寶光里), 두두리(斗頭里) 등지에서 조총과 돈, 술, 안주 등 물건을 약탈하였습니다.
 
피고 이용태는 음력으로 지난해 12월경에 나인영이 음모한 일을 김인식에게서 얻어듣고 다른 일 때문에 이미 약속하였던 지폐 1,700환을 마련해주었는데, 이는 6, 7년전 이원군(利原郡)에 사는 김영학(金永學)에게서 지폐를 위조한 견본을 받아가지고 손주머니 속에 보관하여 둔 것인데, 해당 지폐 견본을 당초에 김영학이 왔을 때 보여주니 사리에 의거하여 책망했을 뿐만 아니라 종이조각에 그린 것은 기계로 찍은 것과는 다른 것이 있지만 금지물건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으니 죄가 없지 않습니다.

피고 민형식은 최익진에게서 나인영 등이 음모한 일을 얻어듣고 지폐 1,400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피고 정인국은 원래 오기호와 친구인데 지폐 200환은 집문서를 찾기 위해서 내주었으며 100환은 자기 아들을 바꾸어 등용한 몫으로 갚아주었다는데 100환을 내줄 때에는 나인영이 음모한 일을 얻어들었습니다.
피고 최익진은 오기호 등이 음모한 일에 찬동하자 지폐 200환을 그들이 우선 대여하여 주니 민형식에게서 지폐 1,400환을 청하여 200환은 우선 대여해주어 계산해 제하고 그 나머지는 나인영, 오기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피고 이석종은 김동필의 요구에 응하여 간신 처단장 7장을 써주었습니다.
피고 이기는 나인영 등이 음모한 일을 알고 나인영의 청에 의하여 일이 성공한 뒤 자수할 글과 자신회(自新會)의 취지서를 지어주었으나 일이 필경 성공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여러번 그만두라고 권고하였다고 하며, 피고 서창보는 나인영 등이 음모한 일을 알고 같은 마음으로 찬성하였습니다.

피고 윤주찬은 나인영, 오기호 등이 음모한 것은 필부나 할 일이라고 하고 극력 만류하였습니다.
피고 이광수는 나인영 등의 음모를 같은 마음으로 찬성하였으며 일이 드러난 뒤에 나인영과 함께 자수하려다가 미처 자수하지 못하고 체포되었습니다.

피고 윤충하는 나인영의 음모를 김인식한테 들어 알고 일이 성공된 후에 같이 자수하기로 동의하였다고 합니다.
피고 이승대와 피고 김영채는 나인영 등의 음모를 전부 김인식에게서 얻어들었습니다. 
피고 최동식은 나인영 등의 음모를 오기호에게서 들어 알았습니다.

피고 서정희는 나인영의 음모를 김인식에게서 듣고 대략 그 줄거리를 알았습니다. 
피고 전덕준은 김경선(金京善)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 나인영 등의 음모를 박대하에게서 듣고 두려워 도주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각 피고들의 공술, 자복 그리고 대질 신문과 증거에서 명백합니다.
 
피고 황경오는 전달 9일에 병으로 죽었으며 이홍래, 박대하, 이용채, 서태운 등은 모두 도피 중이므로 붙잡지 못했습니다. 피고 나인영은 《형법대전(刑法大全)》 제195조의 정사를 변경하기 위하여 난을 일으킨 자에 대한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37조 1항의 사형죄는 한 등급 감한다는 법조문, 같은 《형법대전》 제142조 2항의 발각되고 체포되기 전에 관청에 자수한 자는 2등을 감한다는 법조문을 적용하여 유형 10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오기호와 김인식은 같은 《형법대전》 제137조 2항의 유형죄는 2등급을 감한다는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42조 2항의 법조문을 적용하여 각각 5년 유배형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김동필, 강상원, 지팔문, 박종섭, 김경선, 황문숙, 황성주, 이경진, 조화춘은 같은 《형법대전》 제195조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35조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37조의 법조문 2항을 적용하여 모두 유배 10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이종학과 최상오, 박응칠은 같은 조목 같은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593조 1항의 1인 또는 2인 이상이 인가에 달려들어 병기를 사용한 자에 대한 법조문, 같은 《형법대전》 제129조의 두 가지 이상의 죄가 동시에 나타난 경우에는 중한 편을 따라 처리하는 법조문을 적용하여 모두 교형(絞刑)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이용태는 같은 《형법대전》 제195조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82조의 범죄의 실상을 알고 주범자를 방조한 자는 종범(從犯)으로 논한다는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37조 2항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 678조의 응당 하지 못할 일을 한 자에 대한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 129조의 두가지 죄 이상이 동시에 발생한 경우에는 중한 것을 따라 처리한다는 법조문을 적용하여 유배 10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민형식은 같은 《형법대전》 제195조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83조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37조의 법조문에 비추어 유배 10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정인국은 같은 조목 같은 법조문에 처할 만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돈을 준 것으로 말하면 한번은 오씨의 송사 빚 때문이고 한번은 아들을 위해 보수를 갚아준 것인 만큼 여러 법조문의 내용으로 헤아려 볼 때 전부 적용하기 곤란하니 그 정상을 참작하여 본 법조문에서 한 등급을 감하여 유배 7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최익진, 이석종은 같은 조항 같은 법조문을 적용하여 각기 10년의 유배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이기는 같은 조항 같은 법조문에 처할만하나 자수장과 취지서를 지어준 것은 방조한 것이 범죄를 미리 준비하는데 관계가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여러 번 만류하였으니 용서할 것이 없지 않습니다. 그 정상을 참작하여 원래의 법조문에서 한 등급을 감하여 유배 7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서창보는 같은 《형법대전》 제195조의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27조 1항의 일반인은 범인의 해당 법조문에서 한 등급을 감한다는 법조문과 같은 《형법대전》 제137조 2항 법조문을 적용하여 유배 10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윤주찬은 같은 조항, 같은 법조문에 처할 만하나 그들의 음모를 듣고 극력 말렸을 뿐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여 고발하지 못하였으니 정상과 법을 참작해 보건대 용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정상을 참작하여 본 법조문에서 두 등급을 감하여 유배 5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이광수와 윤충하, 이승대, 김영채, 최동식은 같은 조항, 같은 법조문을 적용하여 모두 유배 10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서정희는 단지 좋은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의 음모를 추측하였을 뿐이고 그 내막을 확실하게는 몰랐으니 논죄하는 데에 경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정상을 참작하여 본 법조문에서 두 등급을 감하여 유배 5년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전덕준은 그들의 음모를 듣고 겁이 나서 도망을 쳤으니 인정과 법으로 헤아리건대 참작하여 용서해주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정상을 참작하여 원래의 법조문에서 두 등급을 감하여 유배 5년에 처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당해 범인 나인영, 오기호, 김인식, 김동필, 강상원, 지팔문, 박종섭, 김경선, 황문숙, 황성주, 이경진, 조화춘, 이종학, 최상오, 박응칠, 이용태, 민형식, 정인국, 최익진, 이석종, 이기, 서창보, 윤주찬, 이광수, 윤충하, 이승대, 김영채, 최동식, 서정희, 전덕준 등을 평리원에서 적용한 법조문대로 형을 집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영인본】 3책 468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외교-일본(日本) / *사법-행형(行刑) / *사법-법제(法制)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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