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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터키군 참전과 김포배치Ⅰ.김포지역 6.25전쟁사

4. 터키군 참전과 김포배치
    -미 제25사단 배속, 김포반도 진출

터키는 1950년 7월 중순 유엔사무총장으로부터 파병요청을 제의받자 4,500명 규모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터키군의 파견이 확정되자 터키 육군은 1950년 8월 3일 제28사단 예하의 제241연대와 제2기갑의 제2포병대대를 주축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한 후 터키 제8군단 제4관구에서 공병, 수송, 병기, 통신, 의무부대를 차출하여 지원부대를 구성함으로써 독자적인 전투수행능력을 보유한 제1여단을 창설 9월 10일 제2기갑 여단장인 야지시(Tahsin Yazici) 준장을 초대 여단장에 임명했다.

터키 제1여단은 9월 13일까지 각 병과별로 보충교육을 실시하였으나 탄약 부족으로 실탄사격 훈련은 하지 못했다.

5,090명으로 편성된 여단은 9월 14일 추령준비를 마치고 20일 지중해의 항구도시인 이스켄데룬에 집결하였고, 제1대대는 25일, 제2대대는 26일, 제3대대는 29일 터키를 출발했다.

여단은 21일간의 항해 끝에 1950년 10월 17일 부산에 도착한 후 20일 대구에 위치한 유엔군 수용소로 이동하였다. 터키여단은 한강이남 후방지역에서 공비토벌 작전과 주보급로 경비업무를 맡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터키여단은 11월 13일 장단으로 이동 패잔병 소탕작전에 참가하고 20일 군우리로 이동하고 11월 28일 와원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다. 11월 30일 미 제2사단 주력과 태형의 계곡을 돌파하고 12월 3일 개성으로 철수하였다. 1950년 12월 14일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김포반도로 진출하였다.

미8군은 12일에 A방어선에서 중공군 개입 후 처음으로 동서 양해안을 연결하는 B방어선(임진강-38선)을 구축하였다.

1950년 12월 10일에 B방어선의 좌측인 김포반도의 방어임무가 터키 여단에게 부여되었다. 이렇게 하여 미제8군의 최좌측으로 문산에서의 임진강 남안을 방어하고 있는 미제25사단에 배속된 여단은 14일에 김포반도로 진출하였다.

여단장은 김포반도의 허리부분(김포읍에서 9㎞ 서쪽에 있는 양촌면 양곡리 부근)을 분할하여 전방 지역이된 반도북쪽의 우전방 마조리 부근에 제1대대를 좌전방 문수산(△376) 부근에 제2대대를 배치하고 후방지역에 제3대대로서 운유산-가현산(△112)-운양리선에 제2저지선을 구축하였다.

그런데 38도선까지 후퇴한 북한군은 그의 주공을 중동부 전선으로 지향함으로써 서부전선에서는 12월 31일까지 소강상태의 전황이 계속되었다. 김포반도 정면의 북한군도 도강을 기도치 않아 터키 여단 정면에서는 북한군과의 전투는 없었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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